남한산성을 말한다.
춘분을 넘긴 주말에 남한산성에 들었습니다. 산성자락 곳곳엔 새움이 트고 물오른 나뭇가지마다 봄기운이 완연하더군요. 기지개를 켜는 노송 사이로 햇살이 날아들고 상큼한 바람결이 잠자는 관목들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습니다. 남한산성은 수도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매년 3백만 명이 다녀간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은 백제로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국방의 보루 역할을 해온 역사유산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 태종의 대군에 밀려 이곳에서 47일을 결사 항전했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떨어지는 등 난관에 봉착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항복했기 때문에 치욕의 현장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남한산성이 함락된 것은 아니고 인조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은 곳은 송파 땅 삼전도입니다. 청 태종은 항복문서에 ‘청나라가 물러간 후에 어떠한 경우라도 산성을 보수하거나 새로 쌓아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넣었다지요. 남한산성이 난공불락의 요새였다는 사실을 반증해주는 대목입니다.
남한산성은 군사 요새이자 산 속에 건설된 계획 도시였습니다. 임금이 머물던 행궁도 있었지요. 천 채가 넘는 집들이 즐비한 큰 도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산성 내에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사찰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괴롭혔다고 하지요. 많은 사람들이 떠나게 된 이유입니다. 남한산성은 이렇게 고비마다 끝없는 浮沈을 거듭해온 살아있는 우리 역사의 현장입니다.
이곳엔 많은 문화 유적들이 있습니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城안으로 行宮이나 崇烈殿, 守禦將臺 같은 건축물도 있고 매 바위나 池水堂같은 연못도 있지요. 서울에만 종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산성 내에도 종로가 있습니다. 옛날엔 로터리에 설치된 종각에서 종을 울려 시각을 알렸기 때문이지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며 빼곡하게 늘어선 노송들과 관목들이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장경사와 망월사 같은 절도 있고, 해발 500m를 넘나드는 산등성이엔 8km 넘는 성곽이 아름다운 곡선과 美麗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무성한 나무 숲 사이로 보였다가 이내 숨어버리는 城 자락은 가끔 하늘과 얼굴을 마주보며 환한 웃음을 날리곤 합니다.
남한산성은 이제 우리의 문화유산을 넘어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 잠정 목록으로 등록되는 등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에도 지난 1월부터 '고대의 군사요새이며 문화 명소'라고 소개되고 있지요.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경기도에서도 이미 지난해부터 남한산성에 대한 관리를 전담하는 사업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한산성사업단에서는 행궁이나 성곽 등 문화재 복원 정비 사업은 물론 산성을 문화마을로 바꾸는 일을 합니다. 10년째 진행되고 있는 행궁복원 사업은 내년 말 모두 완공된다고 하더군요.
지난해엔 고즈넉한 쉼터와 같은 솔바람 책방을 열었는데 이곳은 벌써 마을 사람들의 모임 터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쉼터이자 공부방이며 만남의 장소이자 삶의 애환이 녹아드는 사랑방이 된 것이지요. 남한산성에 대한 이야기와 마을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담긴 마을 신문도 생겨났다고 합니다. 무허가 음식점을 과감하게 철거 시키고 기존의 음식점들을 특화하는 일도 진행되고 있더군요. 간판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물론 웰빙 추세에 맞는 전통 메뉴도 개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설로 내려오는 북문 효자 약수터도 복원한다지요.
마을 주민들의 정성도 대단합니다. 폐교 위기에 놓였던 남한산초등학교를 자율학교로 탈바꿈시켜 전국적인 명문학교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선생님들의 열정이 근간이 되었고 주민들이 힘을 보탠 것입니다. 이 학교는 20분 정도 산책을 하거나 전통차를 마신 후 공부를 시작한다지요. 도예나 목공, 인형 만들기 등 취미활동은 물론 토요일은 아예 책가방 없이 체험학습만 한다고 합니다. 80분 공부하고 30분을 쉬는데 학생들이 정말 좋아한다더군요.
숲 속에 자리한 학교 환경은 한 폭의 그림 그자체입니다. 10년 전 26명에 불과하던 학생이 이제는 155명으로 늘었다지요. 원주민 학생은 18명뿐이고 지금도 전학 오려는 학생들이 줄을 잇는다고 합니다. 모 방송사에서도 남한산 초등학교의 성공사례를 극찬한바 있지요. 그곳에선 오늘도 어린이들이 浩然之氣를 키우며 학교 선배인 해공 신익희 선생과 같은 훌륭한 인재로 커가고 있습니다.
남한산성은 이제 치욕의 현장이라는 굴레를 벗고 민족의 국난을 극복한 역사문화의 산실이자 교육 요람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화사한 봄날,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고향에서 새록새록 움트는 희망의 새싹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2010.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