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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동 어부사시사

홍승표 2008. 3. 24. 12:42
 

            부용동 어부사시사

                          홍승표(시인)

“압개에 안개 것고 뒷 뫼에 해 비췬다. 배 떠라 배 떠라 밤물은 거의 디고 낟 물이 밀려온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강촌 온갖 고지 먼 곳이 더욱 좋다.”로 시작되는 어부사시사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조선 최고의 문장가 고산선생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선생이 어부사시사를 지은 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은듯합니다. 그곳이 바로 보길도 부용동입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고산은 왕세자를 비롯한 왕족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강화도로 향하지요. 그런데 고산이 도착하기도 전에 강화도가 함락돼 배를 돌리고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운둔을 목적으로 탐라로 향하던 중 잠시 들른 보길도의 경관에 취해 탐라행을 포기하고 보길도에 정착했다고 전해져 오지요. 고산은 보길도 섬전체가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풍광이 빼어나고 한복판에 분지가 있어 사람이 지낼만해 이곳에 머물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지형이 마치 연꽃 봉우리가 터져 피는듯하여 부용동이라 이름 지었다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선생은 부용동 일원에 세연정과 낙서재 그리고 동천석실 등을 짓고 유유자적하게 풍류를 즐기며 지내게 됩니다. 그러면서 65세 되던 해에 세연정(洗然亭)에서 어부사시사라는 걸작을 남기게 된 것이지요. 부용동을 둘러싼 격자봉에서 흐르는 맑은 계류를 우리나라 유일의 석조보인 판석보(板石洑    :일명 굴뚝다리)를 설치하여 하류에 물을 담아 세연지라는 연못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세연지의 물을 이용해 인공 연못인 회수담을 만들었던 것이지요. 두 연못사이에 정자를 세우니 그것이 바로 세연정입니다.

 

세연정은 말 그대로 “주변 경관이 더없이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고 속세에 찌든 마음을 씻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지요. 그리고 세연정은 언제라도 나라님을 모실 수 있도록 아주 잘 지은 건축물로도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고산선생은 이곳을 주로 연회와 유희의 장소로 이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고산은 세연지에 배를 띄우고 어부사시사를 노래하며 풍류를 즐겼던 것이지요. 아마도 선생이 옛날 어르신들과는 달리 85세까지 장수하셨던 것은 이러한 풍류와 세월을 낚는 여유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에는 “큰 두꺼비가 뛸듯하면서 아직 뛰지 않고 있다”는 역경에 나오는 싯구에서 따온 혹약암을 비롯해 황소를 닮은 바위와 수백년 된 노송과 나무와 숲이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주변에는 부용동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산 중턱에 동천석실(洞天石室)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고산은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사색을 즐겼다고 하지요. 낙서재까지 도르레를 연결해서 물건을 운반해 사용했다고 하니 신선도 그만한 신선이 없었을듯합니다. 시를 쓰고 강론을 했다는 낙서재(樂書齋)는 고산이 주로 이용했던 생활공간이었다고 전해옵니다. 세상을 등지고 산다고 하여 무민당이라는 편액을 달고 이곳을 침소로 삼아 기거했다는 것입니다.

 

고산이 부용동을 이렇게 훌륭하게 조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150정보의 너른 땅을 가진 큰 부자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많은 재산으로 세연정과 동천석실 그리고 낙서재 등을 만든 것이지요. 그러면서 항상 언제라도 조정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나라님을 모시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런 사심 없이 이런 생각을 갖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나라님을 가까이 모시는 것은 힘들지만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나라님을 모시는 측근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것은 결국 나라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새 정권 들어 이러한 이유로 욕을 먹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듯합니다. 대오각성할 일입니다. 그런 분들은 보길도 부용동을 한번쯤 다녀오셨으면 합니다. 그곳 세연정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았다는 잘못된 생각을 말끔히 씻어버렸으면 합니다. 모두가 세연정에 가서 고산선생을 생각하며 속세의 무상한 욕심과 탐욕을 말끔히 씻었으면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봄빛 완연한 오늘을 사는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자세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