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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의 향기

홍승표 2008. 3. 24. 12:45
 

            다산초당의 향기

                        홍승표(시인)

봄빛이 완연한 날에 남도자락 끝 강진 땅에 자리한 다산초당(茶山草堂)엘 다녀왔습니다. 다산 선생이 태어난 곳은 필자의 고향인 경기도 광주 땅 이라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지요. 그런데 훗날 나라 일을 하다 강진으로 유배를 간곳이 강진 땅 이었습니다. 다산초당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다산 선생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수백권의 책을 저술한 산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이기는 하지만 선생이 계속해서 관직에 계셨다면 과연 수백권의 역작을 남긴 당대 최고의 유학자이자 실학자로 존경받을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18년이라는 유배기간이야말로 선생이 학문을 꽃피운 절정기가 되었던 셈이지요. 필자는 백련사를 먼저 둘러본 후 산길을 따라 다산초당엘 갔습니다. 백련사는 다산 선생과도 아주 인연이 깊은 곳이지요. 선생은 불교에도 관심이 많아 가끔씩 산길을 따라 백련사엘가서 차 한잔을 나누며 주지스님께 불교에 관한 말씀을 듣곤 했다고 합니다.

 

스님 역시 유교에 관한 관심을 갖고 있어서 서로가 좋은 스승이자 제자로써 학문을 배우고 익힌 셈이지요. 선생의 싯구중에 “생각난다. 절을 찾아 책을 들고 공부할 때 이슬비 속 들 못에서 연꽃구경 하던 일이”라는 대목이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에서 두 분의 스님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합장을 하고 예를 갖추고 바라본 스님들은 잔잔한 미소가 가득한 것이 그렇게 평안해보일수가 없었습니다. 돌아서 다시 바라본 스님들의 뒷모습조차도 더없이 넉넉하고 평온해보였습니다. 아마도 다산 선생께서 백련사엘 가시던 모습도 그러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산길이었지만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 갔습니다.

 

다산초당은 크지 않은 규모의 단아한 기와집이었습니다. 현판은 그 유명한 추사선생의 친필을 집자해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지만 원래는 초가집이었는데 다산유적보존회에서 허물어진 초가를 치우고 기와집을 지었다고 하더군요.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흔히들 다산의 목민심서를 학보(學寶)1호라고 합니다. 그만큼 목민심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지요. 이를 빗대어 혹자는 국보(國寶)1호는 불탔지만 학보1호는 남아있다고 말하기도 하다군요. 목민심서는 원형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다산초당 역시 초가집 형태의 원형을 살려 보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다산초당은 정말 아늑한 곳에 후학에 힘쓰시던 동암과 서암이라는 별채와 연지석가산 그리고 천일각이 조화롭게 배치된 명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산초당엘 다녀온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새 정부를 이끄시는 나라님께서도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바탕으로 하는 실용주의를 주창하고 계신듯합니다.

 

사실 통치자는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민본주의 사상, 신분의 차별이나 지역적 차별이 없는 평등주의와 능력본위의 사상, 과학적 이론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혁신을 이룩함으로써 부국강병과 백성들의 생활향상을 도모한다는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한 실용주의를 현 정치에 도입한다는 것은 더없이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산 선생도 일찍이 “목민관은 백성한사람이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 도리”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이 대목에서 한번쯤 집고 넘어갈 일이 있습니다. 지금 나라님께서 어느 곳에서나 가혹한 질책과 경고성 질타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물론 못마땅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국민들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립 서비스에 불과한 것입니다. 구두적인 독려보다는 제도적인 뒷받침, 말 보다는 실천, 공감대보다는 결과와 성과를 중요시 하는 것이 실용주의가 아닐까합니다. 50개 생필품을 직접 관리해야만 실용주의는 아닐 것입니다. 나라님은 더 큰일을 하셔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경제성장도 수치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만 바꾸는 것도 능사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아날로그 식 발상이 아닌지요. 지금은 디지털시대입니다. 지금은 아날로그와 디지털방식을 망라한 디지로그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야말로 실용주의가 아닐까합니다. 지금은 다산선생의 향기 가득한 다산초당에서의 뜬금없는 생각이 완연한 봄빛에 취한 필자만의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길 바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