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봉을 오르며
홍승표 살아가는 일은 끝없는 여행입니다. 우리들의 삶 그자체가 여행인 셈이지요. 일상의 틀을 벗어나는 일은 찌든 삶의 더께를 씻어주는 보약이기도 합니다. 삶의 활력소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성인봉이라는 산엘 다녀왔습니다. 성인봉(聖人峰)은 호박엿과 오징어로 유명한 울릉도에 있는 산입니다. 2년만에 다시 찾은 울릉도는 역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성인봉을 오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혼신을 다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새로운 나무와 풀들과 꽃들이 반겨주더군요. 초록물결이 넘실대는 산자락에는 싱그러운 향기가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숲속엔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 소리가 나무와 나무 가지를 어루만지며 휘돌아 귓전을 울렸습니다. 시원한 바람결이 두 볼을 부드럽게 감싸고 수많은 꽃들이 발그레한 얼굴로 수줍게 웃고 있었습니다. 산속은 말 그대로 신비로움이 가득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느새 몸과 마음은 초록에 물들고 향긋한 풀꽃 내음에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산이 좋은 것은 누구나 가리지 않고 언제 어느 때나 허물없이 반겨준다는 것이겠지요. 힘이 드는 줄도 몰랐습니다. 단숨에 성인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정상에 오르겠다는 스스로의 약속도 지킨 셈이었지요. 사실 그날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녀석이 취업을 위해 최종 면접을 치루는 날이었습니다. 애비로서 특별히 해줄 것이 없는 필자로서는 성인봉에 가장먼저 올라 성인봉의 기라도 보내줘야겠다는 뜬금없고 황당한 생각을 한 것이지요. 피 말리는 취업전쟁터에서 아들 녀석이 한 달 가까이 3차례에 걸쳐 취업시험을 치루는 동안 아내와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냈던 것도 사실입니다. 가족모두가 정성을 다하면 모든 일이 잘 될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직장을 구하는 것이 정말 장난이 아닌 것이 오늘의 현실이고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면 너무 아까운 일이라는 생각도 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처럼 살아가는 일에도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은 아무리 넘쳐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성인봉에 도착하자마자 아들 녀석에게 문자를 날렸습니다. “울릉도 최고봉 984미터 성인봉의 기를 보낸다. 기를 받고 소원성취하기를...”아들 녀석이나 매일 기도하던 아내와 필자 모두가 최선을 다했으니 좋은 결실이 맺어지겠지요. 성인봉에서 나리 분지로 내려오는 길은 아직도 녹지 않은 눈 속에서도 새 순이 돋고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5미터가 넘는 폭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기는 했지만 힘찬 봄기운이 더없이 상큼하기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험한 세상이지만 혼신을 다하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다면 못 이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리분지로 내려와 명이와 쑥부쟁이, 취와 고비나물이 들어간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향긋하고 담백한 맛이 평생에 가장 맛있는 비빔밥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3일 동안 울릉도에 머물면서 참으로 좋은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도동이나 저동같이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나 농촌지역이나 부둣가나 어느 곳을 가도 깨끗하고 사람들은 친절했지요. 독도에 관한 사료들이 전시된 독도 박물관이나 모두가 열심히 사는 울릉주민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계속해 줄어들던 인구가 조금씩 늘고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해안도로가 완전히 연결이 되면 더욱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울릉도는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손꼽히고 있지요. 울릉도엔 지금 활력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새로운 희망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울릉도는 독도와 더불어 우리 모두에게 애국심마저 갖게 해주는 관광의 보고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묵호로 오는 뱃전에서 바라본 울릉도의 모습은 더없이 평화롭기만 했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인봉을 오르던 그 마음가짐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