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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시인) | 파도를 넘어 섬에 가는 일은 언제나 가슴 벅찬 흥분과 감동이 있습니다. 섬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육지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동해바다 끝자락에 독도가 있다면 서해바다 끝자락엔 백령도가 있습니다. 예전에 백령도는 배로 12시간이나 걸려 웬만한 사람들은 좀처럼 가볼 생각을 못했지요. 그런 백령도를 여섯 번째로 찾은 필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백령도는 경기도 땅이었습니다. 옹진군은 섬으로 이루어진 특수지역이라고 해서 많은 지원이 뒤따랐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매년 한 번씩 도백(道伯)이 직접 백령도를 찾아 군인들과 주민들을 격려하곤 했지요. 필자는 관선시절 다섯 분의 도백을 모시고 백령도엘 다녀온 것입니다.
연안부두에서 여객선을 타고 4시간 남짓 달리니 백령도가 보이더군요. 세상 좋아진 것이지요. 백령도는 원래 곡도(鵠島)로 불렸다고 합니다. 섬 모양이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날아다니는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10년 전 대규모 간척사업이 완공돼 350㏊의 농경지와 150㏊의 담수호가 새로 생겨났습니다. 섬의 모양이 ㄷ자에서 ㅁ자로 바뀐 것이지요. 농경지를 늘리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그대로 두는 것이 훨씬 좋을 뻔했다는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사라졌기 때문이지요.
사곶 주변에 2㎞나 깔린 콩 돌 해안은 처음 가 보았습니다. 콩 돌은 수천 수만년 동안 규암이 파도에 깎이고 닳아져 만들어진 자연의 산물입니다. 파도가 밀려와 콩 돌을 쓸어내리는 둘도 없이 맑고 경쾌한 연주를 들으며 해변을 걸었습니다. 모래밭을 걷는 것과는 또 다른 상쾌함이 있더군요. 삶은 삐뚤이와 조 껍데기 술도 한잔 기울이니 세상이 달라보였습니다. 행복 그거 별거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콩 돌 해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돌 한 개라도 육지로 반출이 안 된다고 합니다.
백령도의 또 하나 절경은 바로 두무진입니다. 두무진(頭武津)은 말 그대로 장군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는 형상이지요. 유구한 세월을 묵묵히 살아오면서 파도와 바람에 깎이고 다듬어진 모습이 환상 그 자체입니다. 사자와 코끼리도 있고 촛대와 새, 신선들이 바라보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더군요. 쇠가마우지와 물범을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이렇게 빼어난 자태로 일찍이 제2의 해금강으로 그 명성이 높은 곳이지요. 전에 보았던 효녀 심청이의 전설이 서린 인당수와 그가 환생했다는 연봉바위, 손을 내밀면 금방이라도 닿을 듯했던 북한 땅 장산곶은 해무 때문에 보이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이탈리아 나폴리와 함께 세계에서 단 두 곳뿐이라는 사곶 천연비행장은 그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이곳은 실제로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활주로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4㎞에 이르는 백사장은 자동차가 달려도 거뜬한데 감촉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군요. 까나리 액젓으로 유명한 백령도는 냉면 맛도 그 명성이 높습니다. 냉면을 먹은 일행들은 금강산에서 먹은 것보다 훨씬 맛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백령도 사람들은 통일에 대한 열망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황해도 출신이 많이 살고 있고 북한 땅이 손에 닿을 듯한 우리나라 최북단 섬이기 때문이지요. 백령도야말로 울릉도보다도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는 자연의 보고입니다. 백령도엘 들면 자연 경관이 빼어나 잠시 속세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제는 전에 비해 숙소나 식당이 훌륭하고 사람들의 모습도 더없이 활기차 보이더군요. 통일이 되면 백령도는 가장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관광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한 번쯤 백령도를 찾아가 보세요. 분명 천혜의 빼어난 절경이 찌든 삶의 더께를 씻어줄 것입니다. 나태하고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곧추세워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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