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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엘 들어서서

홍승표 2008. 7. 27. 21:17

 

                          지리산엘 들어서서

                                                 홍 승표

지리산으로 떠나는 날엔 줄곧 비가 내렸습니다. 초저녁에 출발해서 비몽사몽 도착했는데 신통하게도 하늘엔 간간히 별이 보이더군요.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새벽 3시부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칠 흙 같은 어둠을 밝혀가며 한 걸음 한걸음 내딛었지요. 때로 돌부리에 걸리고 나무 가지에 부딪치기도 했지만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정말 고마울 따름이었지요. 법계사 앞에서 김밥으로 아침요기를 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 어렴풋한 여명이 주위를 밝히기 시작하더군요. 또 다른 기운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사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고행중의 고행이지요. 아마도 돈을 받는 일이라면 아무도 산을 찾지 않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절망의 실체를 체험하는 극한 상황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산에 들면 참으로 소중한 성취와 보람, 기쁨과 환희를 느낄 수 있게 되지요. 산이야말로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질곡 한 삶의 진실과 의미를 일깨워주는 위대한 스승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산에 들면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산에서는 스스로가 미미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감하기 때문이지요. 산에 들면 누구나 나무나 돌보다도 못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계곡을 지나는 물소리와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 소리, 안개를 벗어던지는 우람한 자태는 경이로움 바로 그자체입니다. 산에 들면 시간이 흐를수록 누구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낮추게 됩니다. 그러나 하늘과 맛 닿은 산 정상에 닿으면 성취감과 자신에 대한 대견함으로 세상을 다 가진듯한 희열에 도취되기도 합니다.

 

지리산의 정상을 목전에 두고 천황 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후 잠시 숨을 고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친김에 뛰어 오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천황 봉에 다다르기 전에 몸과 마음을 곧추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마침 지리산은 구름을 벗어던지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사라진 구름위로 빛 부신 햇덩이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아! 정말이지 그저 그 순간은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습니다. 세 차례 금강산에 갔을 때 배의 갑판 위나 해금강호텔 옥상에서 바라보이던 햇덩이와는

 

또 다른 감동과 전율을 느꼈습니다. 환호성을 지르며 호들갑을 떠는 주변사람들의 짧은 생각이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뜨거운 햇덩이의 열기를 가슴에 안고 다시 발길을 옮겨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지리산 천왕봉(天王峰)이라는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뒷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새겨 있더군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지리산은 우리나라 최고의 영산(靈山)입니다.  지리산을 벗어나면서 천년 세월 풍파를 이겨낸 주목들의 꿋꿋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