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금바리
홍 승표
제주도엔 특별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야자수 같은 열대식물이 늘어서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지요. 흔히들 제주도엔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다고 해서 삼다도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정말 바쁜 일상으로 정신없이 지내던 필자가 1년간 연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어깨너머에 걸린 낮달이 바람에 펄럭이던 지난 늦가을 어느 날 아내와 아들 녀석과 제주도를 찾았습니다. 결혼기념일이기도 했고 첫 직장을 가진 아들 녀석이 못간 여름휴가대신 휴가를 얻었기 때문이지요. 그 여행을 통해 또 하나의 특별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다금바리 회를 맛보았던 것이지요. 휴가 둘째 날 함께 연수를 받고 있던 제주특별자치도청 이종만국장님으로부터 저녁을 함께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고맙게도 제주시에 살고 계신 국장님께서는 일부러 필자가 머물렀던 서귀포시까지 사모님과 함께 오셨더군요. 서귀포 수산시장 앞에 있는 어느 횟집에서 내외분을 만났습니다. 연수를 오기 전에 도청의 수산본부장으로 일했던 국장님은 항상 웃으시고 신이 많은 분이셨지요. 그분이 필자의 가족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 바로 다금바리 회였습니다. 1kg에 20만원이나 한다는 그 비싼 전설의 다금바리 말입니다. 그 맛은 정말 환상 그 자체이더군요. 아내와 아들 녀석은 감탄사를 연발하더군요.
필자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생 먹어본 회중에서 가장 맛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회와는 달리 우선 껍질을 살짝 데쳐 내오더군요. 쫄깃쫄깃한 것이 담백하고 오돌오돌하게 씹히며 입맛을 자극했습니다. 이윽고 회가 나왔는데 부위별로 빛깔이 저마다 틀리고 살결도 달랐습니다. 뱃살과 볼때기 살 어느 것 하나 맛이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요. 한라산 소주마저 달콤하기 만 했습니다. 놀란 것은 그 후였습니다. 다금바리 내장이 회로 나온 것이지요. 내장을 회로 먹을 수 있다는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맛이야말로 생전처음 느껴보는 그런 맛이더군요. 아내조차 처음엔 내장을 어떻게 먹느냐고 내숭을 떨더니 이내 젓가락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신선하고 담백하고 달콤하고 고소하고 상큼하고 향기 그윽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회를 뜨고 남은 것으로 맑게 끓인 국이었습니다. 그 칼칼하면서도 시원하고 향기로운 국물 맛에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고 영혼까지 맑아지는 듯 했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한라산 다섯 병이 순식간에 없어지더군요. 회를 먹고 있는 동안 다금바리를 직접 잡았다는 선장님이 인사를 오셨더군요. 배를 다섯 척이나 갖고 있다는 선장님은 신통하게도 필자와 같은 성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필자와 이국장님에게 정말 복이 많은 분들이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렇게 좋은 다금바리는 운대가 맞아야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국장님 내외분과 함께 너무도 좋은 음식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아내와 아들 녀석도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더군요. 국장님의 소개로 제주도 토속음식을 하는 유리네 라는 식당에서 토속음식을 맛본 것도 나름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제주도를 여행하는 동안 다금바리 향기가 입안에 가득하더군요. 그것은 특별한 제주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특별함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특별한 회 맛을 다시 느껴보기는 어려울듯합니다. 제주도 사람도 쉽게 맛볼 수 없다는 자연산 다금바리로 결혼 기념여행은 더없이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다금바리 맛과 향기가 입안에 가득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다금바리 회를 맛 볼 수 있으리라는 간절한 기대를 가져보게 됩니다. 제주도의 특별함을 더해준 다금바리는 오래 오래도록 잊혀 지지 않을 테지요. 그렇습니다. 이제 다금바리는 필자의 가슴 한구석에 남아 가끔씩 기막힌 맛과 향기로 살아 요동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