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슴
머슴이라는 더부살이가 있었다. 그 어릴 적 기억속의 머슴은 한마디로 우직함과 뚝심의 상징으로 살아있다.
농사일이 유난히 많았던 그 시절의 머슴은 대체로 잘사는 부잣집의 더부살이였다. 머슴들은 이른 봄부터 논과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는 농사일을 도맡아 하고 겨울에도 새끼와 가마니를 짜는 전천후 일꾼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주인이 시키는 자질구레한 일은 물론이요, 도련님이나 아씨로 불러야하는 주인댁 아들과 딸들의 심부름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온갖 잡동사니 일 모두가 머슴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 머슴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달다거나 쓰다거나 아무 불평 없이 그저 묵묵히 제 할일을 다해내곤 했다.
주인이나 그 가족에게 대든다거나 하는 일은 아예 꿈조차 꾸지 않았다. 어느 댁에선 머슴이 너무 착실해서 데릴사위로 맞이한 일도 있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예전과 같이 열심히 일하는 몸짓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이런 머슴은 아니지만 또 다른 머슴도 있었다. 잘사는 집이야 머슴을 부렸지만 대다수의 농사꾼 집안에서는 머슴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그런 집에서는 여러 명의 형제들 중 한사람이 머슴 아닌 머슴살이를 해야만 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장남이 아닌 둘째나 셋째들이 머슴살이를 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던 것 또한 그때의 현실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그 머슴 아닌 머슴살이를 숙명(?)처럼 여기면서 전문 머슴살이꾼 못지않게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곤 했다.
그런 머슴들의 희생과 뒷바라지가 있었기에 다른 형제자매들은 도시로 유학을 가거나 보다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필자 역시 둘째로 태어난 덕분(?)에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훌륭한 머슴이었다. 바로 아래로 여동생 둘이 있는 탓에 딱히 일을 도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저 숙명이려니 여기고 정말 땀 흘리며 열심히 일을 도왔다. 말이 필요 없었다. 몸으로 보여주고 일한 성과가 보이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동네에서는 말없이 일을 잘하는 아이로 평판이 좋았다.
어머니는 이러한 필자를 어여삐 여겨 곰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셨다. 일을 마치면 다른 형제들보다 밥도 많이 담아주셨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머슴도 상머슴인 셈이었다. 어쨌거나 그 시절 이러한 머슴들의 정성과 노력이 오늘의 터전을 마련한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머슴다운 머슴이 없다. 도대체가 어렵고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하고 어느 곳에서나 자기가 하는 일은 되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안 된다는 이기주의가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스스로의 잘못이나 허물을 뉘우치고 반성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덮어씌우려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작태들이 난무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겐 어느 것 하나 어렵지 않은 것이 없다. 무엇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정말이지 억장이 무너져도 한참 무너질 일이다.
머슴이 그립다. 아니 머슴정신이 그립다. 지난 날 머슴이 되겠다고 나섰던 사람들, 그들은 지금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머슴으로 부리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머슴만도 못한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만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 하지만 그 잘못된 것이 너무 많아 정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조차 식별하기가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번쯤 뒤를 돌아보는 지혜와 슬기를 간직해보자.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머슴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머슴이 그립다. 머슴처럼 살고자하는 몸짓이 그립다. 설혹 필자가 다시 머슴처럼 살아야 한다고 해도 좋다. 정말이지 머슴다운 머슴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