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
질곡의 삶 살아온 부모님 뵌듯… 어둠 속 한줄기 등불같은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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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년 03 월 15 일 일20:03:47 |
홍승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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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시인) | 온 세상에 '워낭소리'가 널리 널리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독립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200만 이상의 관객이 찾은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야단들입니다. 세상이 온통 이렇게 난리법석을 떠니 워낭소리가 뭐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워낭소리는 소의 목에 달린 방울소리입니다. 소를 주제로 영화를 만든 것이지요. 팔순이 다된 최 노인에겐 친구 같은 소가 있습니다. 그것도 자그마치 30여년을 함께 살아온 둘도 없는 동반자이지요. 농사를 지으며 아홉 남매를 키워 출가시키기까지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 인생역정은 고생길 그 자체였을 겁니다.
그 고생길을 함께 걸어온 소가 있지요. 그 소가 없었다면 노인부부는 아마도 지쳐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식보다도 더 소중한 살붙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소는 보통 스무 살을 살기가 힘들다는데 어찌 마흔 살까지 살았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 일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할아버지의 정성과 사랑 덕분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할아버지는 귀가 잘 안 들리지만 소의 워낭소리는 귀신처럼 듣고 나와 소를 보살핍니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하! 루도 거르지 않고 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오지요. 심지어 소가 먹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며 농약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할머니보다도 소를 더 생각하는 고집불통이지요. 할머니는 가끔 "아이고 내 팔자야! 영감 잘못 만나 평생을 고생만 하네. 소만치도 못한 내 팔자야!"라며 신세한탄을 하지요. 그러나 그 넋두리에도 소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소가 없었다면 많은 농사일은 물론 할아버지가 제대로 거동할 수 없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지요. 소도 할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겨운 노구를 이끌고 논밭을 갈고 짐을 실어 나르는 일을 말없이 해내는 것이지요. 경운기나 트랙터 버금가는 훌륭한 농기구인 셈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다리가 불편한 노인에게 소가 끄는 달구지는 자가용이기도 하지요. 가끔 소에게 화를 낼 때도 소는 말없이 커다란 눈망울만 껌벅거릴 뿐 아무 원망도 하질 않습니다. 젊은 소를 들여와 외양간에서 밖으로 내몰렸을 때도 그저 물끄러미 젊은 소를 바라볼 뿐이었지요.
추석 명절에 할아버지 내외를 찾은 아홉 자! 식들은 이구동성으로 소를 팔라고 했습니다. 자식들이 용돈을 드리겠다는 것이지요. 할아버지는 들은 체도 안 합니다. 소는 돈하고 바꿀 수 없는 당신의 삶 그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소가 너무 늙어 올해를 넘기기 힘들 거라는 수의사의 말을 듣고 우시장엘 가지요. 그러나 소를 못 팔고 돌아옵니다. 눈물을 흘리는 소가 불쌍해서가 아닙니다. 겉으론 값이 너무 싸다는 이유를 달았지만 할아버지는 애당초 팔 생각이 없었던 듯합니다. 결국 소는 할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게 되지요. 말없이 죽어가는 소를 그저 넋을 잃은 채 바라보기만 하는 할아버지. 죽어가는 소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을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의 인생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하는 회한에 몸서리쳤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고생 많이 했다. 좋은 곳으로 가거라이." 소를 묻고 나서 할아버지는 커다란 고목나무아래 앉아 소와의 이별을 절감하게 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리지요.
워낭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의 부모님들입니다. 대부분의 우리네 부모님들이 바로 그런 삶을 사신 때문이지요. 영화를 보는 동안 왜 그렇게 돌아가신 부모님생각이 나던지 진땀을 흘렸습니다. 요? 요즘 젊은이들은 워낭소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세대의 처절했던 질곡의 삶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워낭소리를 보고나서 목이 메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소를 키우고 농사일을 하시며 힘겹게 사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워낭소리의 주인공 같은 삶을 사신 분들이 아낌없는 존경을 받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워낭소리는 어둠을 밝히는 한줄기 등불이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동안 중심을 잃고 살아온 삶의 몸짓을 다시 곧추세우는 소중한 보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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