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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돛배

홍승표 2009. 11. 9. 17:46

황포돛배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배는 어디로 가느냐.┛로 시작되는 황포돛대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옛날에 아버지가 한잔 술 걸치시고 돼지고기 한 근 지푸라기에 매달고 집으로 오실 때 갈대의 순정과 함께 흥얼거리시던 노래였지요. 아마도 어렵고 고단했던 그 시절 식구들에게 고기를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흥에 겨워 부르던 노래였다고 기억이 됩니다. 그때는 기분이 좋은데 왜 그리 처량한 노래를 부르셨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요. 지금에야 얼마나 사는 것이 힘겹고 고단했으면 그런 노래를 불렀을까하는 생각에 울컥하기도 합니다. 황포돛대나 갈대의 순정은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저도 모르게 따라 부르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가을 소풍을 갔을 때 철없던 제가 이 노래를 불렀었지요. 그 후 한바탕 난리가 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담임선생이 교장 선생께 야단을 맞았고 느닷없이 유행가 금지령이 내렸었지요. 그 후 저는 뜬금없이 문제아가 되었고 아버지가 학교에 오셔서 정중히 사과를 하고 난 후에야 사건이 마무리 된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황포돛대는 말 그대로 황토색 천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황포돛배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동력인 셈이지요. 임진강에는 황포돛배가 있습니다. 이 배는 조선시대 운송수단이었던 조운선을 원형 그대로 재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이 돛배가 마포나루까지 오가던 유용한 교통수단이자 화물 운송수단이었다는 것이지요. 지금 임진강을 오르내리는 돛배의 외형은 황포돛배이지만 실제론 디젤 엔진으로 움직이는 동력선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 배를 타고 유유히 임진강을 돌아보는 일에 매료되는 듯합니다. 새로운 관광 명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지요. 예로부터 배를 타고 임진강의 적벽을 돌아보는 것이 임진 팔경의 하나였다고 전해집니다.

 

임진팔경은 조선시대 남용익선생이 임진나루 남쪽에 있던 내소정(來蘇亭)이라는 정자에서 임진강주변의 절경을 노래한 것이라지요. 임진팔경은 이렇습니다. 나그네가 화석정 주변에 만발한 꽃을 바라본다는 화석정의 봄, 백척 난간에서 강에 낚시를 드리우고 고기를 낚는다는 마당바위 낚시, 정처 없이 뭉게구름이 떠오른다는 송암(松巖)의 맑은 구름, 백로가 날고 풀빛이 나는 듯 맑았다 흐렸다한다는 장포의 가랑비, 역루(驛樓)에 달이 비쳐 별이 그리 멀지않게 보인다는 동파역의 달, 눈이 오고 밤이 되어도 강가 사리 문이 열린 것은 아마도 섬계(剡溪)의 왕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는 오동나무 정원(桐園)의 눈, 나루머리에 절이 서니 하얀 구름층을 이루고 밤중에 종 울리니 노승이 있는듯하다는 진사(津寺)의 새벽종, 그리고 적벽머리에 배 띄우니 풍류와 정취가 그만이라는 임진강 적벽 뱃놀이가 임진 팔경인 것이지요.

 

 두지나루에서 배를 타고 자장리 적벽과 강 자락을 돌아보는 일은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그러고 보니 옛날 우리 동네에서 부자로 산다는 어르신들이 남한강에 배를 띄우고 놀이를 하시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함께 배에 오른 기생들의 가무를 즐기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모습이 가히 신선이 부럽지 않은 듯 했습니다. 나름 풍류와 낭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포돛배를 타본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 여주 남한강에서 타보았고 파주에서 일하게 된 후 모처럼 다시 타보게 된 것이지요. 자장리 적벽은 그 모양새가 특이합니다. 윗부분은 수 만권의 책이 꽂혀 있는 듯한 수직모양인데 아래는 수평으로 겹겹이 쌓인 시루떡 형태로 이루어져 있지요. 자장리 적벽은 용암이 흘러 형성된 현무암 석벽으로 무려 60만년 前에 이루어진 주상절리라고 합니다. 임진강에는 열한개의 주상절리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자장리 적벽은 아름답기로 정평 나 있는 곳이지요.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세계적으로 희귀종인 돌단풍과 어우러진 모습이 환상적이라는 것입니다. 적벽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산책로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해가 불그레한 얼굴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넘어갈 때 붉게 물든 적벽의 모습은 기막히게 아름답지요. 은빛으로 흐르던 강물도 붉게 물들어 임진강자락은 온통 붉은 빛으로 출렁이게 됩니다. 뱃머리에 선 나그네의 얼굴이 붉어지면 황포돛배의 낭만은 절정에 이르게 되지요. 배에서 내려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을 안주삼아 한잔 걸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면서 아등바등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지요. 가을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황포돛배를 타고 시린 하늘을 바라보면 떼 지어 날아드는 철새 날개위로 된서리가 내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제 살얼음이 깔리면 돛배도 탈 수가 없겠지요. 더 늦기 전에 돛배를 타보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임진강 황포돛배를 타면 가을의 끝자락이 던지는 환상적인 정취에 흠뻑 매료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