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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에서

홍승표 2010. 4. 21. 12:38

안면도에서

햇살이 맑고 고운 날 안면도로 향했습니다. 모처럼 나들이를 나선 것이지요. 살다보니 아주 정신없이 바쁘거나 버거운 것도 아닌데 한동안 나들이를 못했습니다. 모처럼 큰일을 저지른 것이지요. 안면도는 말 그대로 편히 쉴 수 있는 곳(安眠)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에선 몇 차례 세계 꽃박람회가 열렸었지요.

여장을 풀고 꽃 지 해수욕장을 걸었습니다. 하얀 모래톱들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햇살에 반짝이다 밀물 때면 물속에 들어 꿈을 꾸는 곳이라지요. 할미 할아비로 불리는 자그만 섬도 있었습니다. 누군가 말했다지요. 할미는 좋겠다. 할아비와 늘 함께 있어서 좋겠다. 할아비는 좋겠다. 할미와 늘 마주보며 살아 좋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사람들도 할미와 할아비 섬처럼 언제까지나 마주보며 함께 살면 참으로 행복하겠지요. 이러한 생각 때문일까 손잡고 해변을 걷는 노부부의 모습이 더없이 평화롭고 안온해 보였습니다. 물이 빠지면 사람들은 걸어서 할미와 할아버지를 만날 수도 있지요. 꽃 지 다리에 올라 바라본 할미와 할아비 사이로 보이는 낙조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물모양의 꽃 지 다리는 희망을 건진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세계 꽃박람회가 열리는 수목원도 가보았습니다. 입구에 늘어선 장승들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선 수목원은 아늑했습니다. 잘 다듬어진 정원이 있는가하면 습지공원도 있고 정자와 돌탑도 있더군요. 전망대에서 바라본 수목원은 한 폭의 빼어난 산수화 그 자체였습니다. 꽃 지 해수욕장도 보이고 아기자기한 주변 경관이 싱그럽고 상큼했습니다.

 

수목원 건너에 있는 자연 휴양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껍질이 붉은 토종 소나무이더군요. 이곳은 조선 시대부터 궁궐에서 특별 관리한 순수 국내산 소나무 군락지라고 합니다. 이곳의 소나무로 궁중의 궁재와 배를 만들었고 경복궁을 지을 때 사용했다지요. 단일 소나무 숲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소나무는 나무 가운데 가장 으뜸인 나무입니다.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라는 뜻의 ┏수리┛가 술이 되고 다시 솔 로 변한 것이라지요. 우리 조상님들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고 생을 마치면 소나무 관에 들어 영면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소나무 생가지와 숯과 붉은 고추로 만든 금줄을 대문에 내 걸었지요. 금줄은 잡인의 출입과 잡신의 침입으로부터 산모와 아기를 보호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소나무 자가 들어간 지명이 7백곳 가까이 된다고 하지요. 꿈에 소나무가 보이면 벼슬을 한다고도 전해집니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집안이 번창 한다고도 하지요. 왕릉주변에도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혼령이 고이 잠들게 보호막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소나무를 나무중의 으뜸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영문으로 표기되는 pine도 동사로 번역하면 戀戀의 정을 어쩔 수 없다는 뜻이라지요. 일어로는 마쯔이고 기다린다는 뜻을 갖고 있다 합니다.

 

고산 선생은 ┏더우면 꽃 피우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 모르는가 구천에 뿌리 곧은 줄 그리하여 아노라┛라는 시를 남기셨지요. 소나무는 한겨울 모진 바람에도 늘 푸른 잎을 자랑하는 청정한 자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붉은 소나무는 높은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지요. 한 여름이면 모든 수풀들이 저마다 푸르른 자태를 뽐냅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잎들이 떨어져 한겨울엔 안쓰러울 정도로 초라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소나무는 그대로의 몸짓과 빛깔을 간직하고 있지요. 늘 한결같은 모습에서 세파에 물들지 않은 선비의 의연한 삶을 생각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흘간 안면도에 머무는 동안 압권은 역시 붉은 소나무였습니다. 소나무 숲에 들어 지친 육신을 던져버리고 느긋하게 보낸 시간은 참으로 행복했지요. 노송사이로 수줍은 얼굴로 들어오는 햇살이 찌든 삶의 더께를 씻어주는 듯 했습니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지만 뜬금없이 소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電光石火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러한 짧은 생각이야말로 편히 쉴 수 있는 곳 안면도가 안겨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2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