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시를 쓰는게 참 어려워요...

홍승표 2010. 5. 26. 09:00

시를 쓰는 게 참 어려워요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고/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당신이 받아볼 수 있을까요/그림자처럼/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마음 깊이 나는 소망합니다./내가 얼마나 당신을 간절히 사랑 했는지/당신이 알아주기를…/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어느 햇빛 맑은 아침/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영화 ‘’를 보는 날 부슬부슬 봄비가 내렸습니다. 는 16년 만에 그것도 예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 다시 스크린에 복귀한 여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였지요. 제가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당대 최고의 여배우 트로이카로 명성을 날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 여배우는 가장 지적이고 단아한 역할을 많이 했었다고 기억됩니다. 훗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와 결혼을 하고 프랑스로 날아갔었지요. 그녀가 다시 돌아온 겁니다.

 

그녀의 얼굴은 아직도 곱고 단아했습니다. 예순여섯이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녀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여주인공의 역할과 이미지가 바로 만년소녀인 것은 그녀의 이러한 이미지와 연기력을 염두에 둔 것인 듯했습니다. 그녀의 본명이 실제로 ‘미자’라고 하더군요. 만년소녀 미자는 우리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감성일지도 모릅니다.

 

미자는 일상의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화원에서 시에 대한 강좌를 듣게 되지요. 그 자신 또한 알록달록한 꽃무늬 옷에 흰 뜨게 모자까지 쓰고 마치 열일곱 소녀 같은 낭만을 즐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삶의 주변은 어둡고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반항적이고 퉁명스럽기만 한 중학생 손자와 변두리 아파트에서 살며 몸이 불편한데다 괴팍하기까지 한 노인을 간병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다소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어렵게 살아가던 어느 날 감당하기 힘든 일이 벌어집니다. 손자 녀석이 다른 친구들과 한 여중생을 성폭행했고 그로 인해 여학생이 자살을 한 것입니다. 그 사건으로 평온했던 그의 삶은 혼돈과 절망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흐르는 강물 위로 떠내려 오던 소녀의 시신이 이 사건을 암시했던 것이지요. 이 영화는 극히 절제된 詩語로 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한 떨림을 안겨줍니다. 맑고 싱그럽지만 상큼하지는 않고 단아하고 담백하고 정갈하지요. 폭포수처럼 웅장하거나 큰 울림을 주지는 못하지만 고운 햇살 속에 잔잔한 은물결로 나른한 오후를 즐기는 호수와 같은 감동을 전해줍니다.

 

16년에 이르는 공백을 깨고 스크린에 복귀한 여배우는 미자 역이 정말 제격이더군요. 감독이 그를 염두에 둔 듯했습니다. “옛날에는 내가 웃으면 다 뿅 갔어요.”라는 그의 표정이 예쁘기만 하더군요. 어색해 보이는 그의 연기조차 감독의 연출 의도임을 알게 됩니다. 다소 가벼운듯한 안내상이나 실제로 몸이 불편한 김희라 같은 조연들의 연기도 영화를 빛나게 했습니다. 詩想을 찾으면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그녀는 시상을 찾지 못해 절망합니다. 시상은 찾는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지요.

 

섬진강을 지키며 살아온 김용택 시인은 영화를 통해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잘 봐야 된다.”고 말합니다. 소녀 같은 미자는 시인의 말을 그대로 따르려고 하지요. 그래서 그녀는 사과를 들여다보고 밥을 먹는 손자를 유심히 바라봅니다. 교회에서 몰래 가져온 자살한 여학생의 사진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손자의 표정을 살피기도 하지요. 여학생이 성폭행 당한 과학실에 찾아가보고 몸을 던진 다리 밑을 내려다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녀는 시 낭송회에서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형사를 보며 시를 모독한다고 분통을 터트립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손자를 경찰서로 보내고 난 후 손자를 대신해 함께 그녀의 배드민턴 동무가 되어주는 사람이 바로 그 형사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요.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하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의 이치를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우여곡절과 고단한 삶의 여정을 통해 얻어진 思惟로 그녀는 그토록 쓰고 싶었던 시를 쓸 수 있게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도 흐르는 강물에 자살한 여학생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미자 자신일 것입니다. 이 영화는 눈으로 보는 영화가 아닌 듯합니다. 가슴으로 봐야 하는 영화인 것이지요. 재미로 보면 지루하지만 느낌으로 보면 그 잔잔한 여운이 오래 남는 그런 영화입니다. 마치 군더더기 없는 한편의 시 같다는 말이지요. 살아가는 것이 무언지 어떤 삶이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메시지가 담긴 그런 영화입니다. 절망감에 빠져있는 사람에게는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그런 마음의 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