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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에서...

홍승표 2010. 6. 8. 07:53

헤이리 마을에서

 

풀꽃향이 진동하는 유월의 첫 주말 저녁에 헤이리를 찾았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공연이 있기 때문이었지요. 석양이 뉘엿뉘엿 기울어갈 무렵 노을 진 마을 전경은 한 폭의 빼어난 수채화이더군요. 공간 퍼플 옆 소나무 숲에 마련된 야외 공연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었습니다. 국내외 유수의 여느 공연장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우아한 예술공간이었습니다.

 

공연은 5년 전부터 이곳 헤이리 주변에 사는 지역주민들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한 기업인이 중소기업 매칭 펀드를 통해 후원하는 헤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가 매년 열리는 것이지요. 이번 공연이 일곱 번째라고 하더군요. 공연장은 서있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KBS 클래식FM 방송에서 DJ로 활동하는 장일범 씨가 사회를 보고 반백인 서현석 선생이 지휘를 맡았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자 일순 조용해지더군요.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아름다운 자연과 싱그러운 바람, 그윽한 노을빛과 어우러져 환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천상의 하모니가 따로 없다는 그런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저마다 개성이 다른 악기를 다양한 심성과 음악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 사람의 지휘에 따라 연주를 하게 됩니다. 스스로 곡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지휘자의 의도에 맞추고 다른 연주자들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음률의 조화를 이뤄나가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이처럼 스스로의 영역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살아간다면 세상은 이미 천국이 되었을 겁니다.

 

테너 한윤석씨는 사회자의 소개처럼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막시무스 같이 우람한 거구에서 내뿜는 소리가 폭발적이었습니다. 워낙 많이 알려진 곡이지만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압권이더군요. 열 살밖에 안 된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 양의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은 놀라움 속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또 한 명의 음악 신동이 탄생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공연이 끝나자 모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냥 앉아 있기에는 가슴속에 가득 찬 울림이 너무도 크게 출렁거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덕분에 두 곡의 연주를 덤으로 들을 수 있었지요. 공연은 ‘마이 웨이’로 막을 내렸지만 사람들은 공연장을 떠날 줄 몰랐습니다. 공연의 감동과 전율이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지요.

 

공연에 앞서 의미 있는 행사도 있었습니다. 헤이리 전국 음악 콩쿨 시상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파주시와 공동으로 주최한 이 음악 경연에는 전국에서 150명이 넘는 음악도 들이 참가해 기량을 겨뤘다고 합니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이번 경연에 많은 학생들이 참가한 것은 헤이리가 가지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헤이리는 문화예술인들의 보금자리이고 문화예술의 아이콘이자 우리나라의 자존심이기도 합니다. 이곳이 문화지구로 지정된 것도 이러한 가치와 상징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창작과 전시의 영역을 넘어 음악인의 산실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헤이리 음악 콩쿨을 통해 배출된 음악인들이 훗날 이곳에 살면서 이 행사를 주관하게 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헤이리 전국 음악 콩쿨 시상식에 이어 헤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면서 마음이 넉넉해졌습니다. 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고 문화예술의 향기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헤이리를 찾았으면 합니다. 문화예술의 향기를 접하다 보면 보다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