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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 C'est si bon ) 공연을 보고...

홍승표 2011. 2. 2. 18:54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없는 웃음이

라일락꽃 향기를 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밤하늘에 별 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 테요... 」윤형주가 부른 노래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노래 말입니다. 아마도 30년前쯤에나 불렀음직한 이 노래를 다시 부른 것은 설 연휴가 시작되는 전날 한 밤중이었습니다. 전날 모 방송의 “놀러와”라는 프로에서 마련한 “세 시봉 콘서트”를 보고 서둘러 들어와 이틀째 공연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따라 부른 것이지요. 그 늦은 밤중에 아마도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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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저는 이틀 저녁 그 공연을 보면서 정신 줄을 그만 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조 영남, 윤 형주, 송 창식, 김 세환씨 등 제가 한창때이던 70년대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펼친 공연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환상의 소리는 각박하고 힘겨운 일상 속에 찌들었던 삶의 더께를 말끔히 씻어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둘째 날 윤도현과 장기하가 함께 입을 모아 부른 “담배 가게 아가씨”는 시작부터 魂을 빼앗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노래를 통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감성의 잔털들을 다시 일깨우고 일으켜서 불타오르게 하는 마법을 발휘하더군요. 저도 모르게 한순간도 눈을 돌리지 못하고 공연장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70년대는 말 그대로 통기타소리와 청바지 패션이 온 세상에 넘쳐 흘렀었지요. 소풍이나 야유회를 가면 통기타와 야전전축은 필수품이었습니다. 통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면 어느새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어느새 야전을 틀어 놓고 고고 춤을 추며 발악(?)을 하곤 했지요. 그러다 밤이 되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곤했는데 못생긴 청춘들은 그윽한 눈빛으로 불빛에 아른거리는 단발머리 소녀를 바라보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딱히 즐길 거리가 별로 없던 그때 이런 일들이 그나마 낭만적인 일이었던 것이지요. 그때 부르던 노래 말들은 하나같이 감성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밤 문득 드릴 말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내 사랑을...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내 사랑을...

당대 최고의 배우인 신성일과 장미희가 주연해 공전의 빅 히트를 기록한 영화 “별들의 고향” 주제곡으로도 유명한 이 노래는 그야말로 노래 말이 일품입니다. 노래 말 자체로 사랑 고백을 대신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란 말입니다. 연애중인 청춘치고 여친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합니다. 그만큼 이 노래는 절절함이 묻어나는 그런 노래라는 것이지요.

 

이날 세시봉의 또 다른 멤버 이장희가 미국에서 귀국해 특별 출연을 했습니다. 지난해 추석특집 출연을 고사했던 이장희는 “이번이 우리가 모여서 공연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흔쾌히 출연을 결정지었다”하더군요. 그는 멤버들에게 손수 적은 편지를 읽어주었습니다. 그는 편지글을 통해 김 세환에게는 "언제나 나에게는 절대로 늙지 않는 피터 팬 같은 존재"라고 하더군요. 윤 형주에게는 "너는 지금이나 그때나 언제나 스타일리스트이고 지금도 여전히 여자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며 그에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또한 송 창식에게는 "일대의 歌客 같은 사람, 환상의 목소리를 지녔다"고 말했고 조 영남에게는 "음악, 미술, 문화계의 천재"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더군요. 그리고 말미에는 항상 "사랑한다."라는 말을 덧붙여 친구들의 눈시울을 젖어들게 했습니다. 특히 항상 유쾌한 모습을 보였던 조 영남은 편지가 낭독되는 동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억지로 울음을 참는 듯 보이더군요. 편지를 읽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시며 다섯 사람의 우정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김 나영의 두 볼에는 눈물이 그치지 않고 흐르더군요.

 

 

학창 시절 "밤을 잊은 그대에게" 라는 심야 방송에서 "Without you"같은 노래를 들으면 왜 그리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흐르던지 잠못 이루고 뒤척일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 세시봉 공연이 또한 그러했지요. 아련한 옛 추억과 알수없는 그리움이 하염없이 밀려와 도무지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틀간의 공연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행복합니다. 한 달 넘도록 구제역 방역 비상근무로 지쳐있던 피로가 말끔히 씻어 내리는 듯했지요. 정말 대단한 가수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순수했던 젊은 날이 그리워져 몸살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지 못할까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남자의 자격에서 박 칼린 음악 감독이 보여준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자정을 훨씬 넘긴 야심한 밤중임에도 저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는 또 하나의 나를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했던 젊은 날의 제 모습이었지요. 세 시봉 공연의 여운은 오래도록 제 가슴속에 살아 숨 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