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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을 걷다...

홍승표 2011. 2. 6. 11:42

江위를  일은 꿈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강을 걸었습니다. 설 연휴에도 구제역 방역 상황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파주를 떠날수가 없었지요. 설 다음날 임진강을 걸어보기로 한 것입니다. 올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 때문에 얼음두께가 40cm정도나 된다고 하더군요. 아침 일찍 9명의 용사들이 임진강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걷지않은 눈길을 걷는 기분이 더없이 상쾌하더군요. 곳곳에 보이는 적벽이 우리를 반기는 듯 했습니다. 적벽은 오랜 세월동안 자연이 만들어 준 좋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로움에 지쳐 몸서리치며 울어대던 강바람이 일순 조용해졌습니다. 9명의 낯선 얼굴들이 강으로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그리워 저린 가슴을 부둥켜안고 남모르게가슴앓이를 하던 임진강의 화색이 금방 환해지더군요. 아마도 봄부터 초 겨울까지 강을 거슬러 오르내리며 고기를 잡던 어부들의 노래소리가 끊어졌기 때문에 한동안 적적했을 겁니다.  가끔 이름모를 새들이 날아들어 여울목에서 목을 축이고 가지만 그들은 잠시 머무는철새일뿐이기 때문이지요. 江은 조용했습니다. 말이 필요없는 듯 했습니다. 한 겨울江의 모습이 이렇게 의젓하고 품위가 있는지 미처 몰랐었지요. 온통 눈밭같지만 유리알같은 얼음장 아래에는 물이 용트림하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물이 휘돌아 흐르는 여울목은 얼음이 채 얼지않아 물이 더욱 맑아 보이더군요.

 

사람들은 말합니다. 가끔 속절없이 길을 나서고 싶을때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山도 아닌 강을 찾아 나선 것은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테지요. 사실 50일 동안이나 밤 늦도록 구제역 종식을 위해 사력을 다한 탓에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있었습니다. 더구나 본의 아니게 PD수첩이나 추적 60분같은 고발 프로의 인터뷰를 했고 정치 부시장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쓴 뒤로는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생각에 몸서리치기도 했습니다. 누가 시사성 고발 프로에 나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마저 안하면 완전히 왜곡보도될 수 도 있다는 절박감에서 응했던 것이지요. 결국 프로의 성격과 PD의 입맛에 맞게 편집되어 방송되었고 저 스스로도 정말 안타까운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제가 욕먹는건 참을수 있는데 파주 공무원들이나 축산인들이 욕먹는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어금니를 질끈 물고 지내오다가 이제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에 임진강을 찾은 것이지요. 내려 놓는다는거 그거 별거 아닙니다. 진작 내려놓아야 할 것을 내려놓지 않고 있었을 따름이지요.

           

스스로를 높이려하면 낮아지고 낮추면 오히려 높아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기까지많은 세월이 지났습니다. 지천명은 하늘의 뜻을 알고 모든 걸 내려 놓을줄 아는 그런 나이지요. 지천명을 훨씬 넘긴 나이에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많다면 잘못 사는 삶이겠지요. 3시간 남짓 임진강을 걸으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말로는 내려놓는다면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걸 잘 알게 되었지요. 내려놓고 산다는 거 그거 결코 간단한게 아닙니다. 내려놓는 걸 끊임없이 해야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몸짓을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해 보았지요. 임진강은 사계절 다른 모습이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물이 흐르는 마음의 고향입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해가도 변하지 않는 그런 곳이지요. 임진강을 흐르는 물이 한강과 만나고 다시 바다를 이루듯이 저 또한 그런 마음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비록 고향엔 못 갔지만 임진강을 걸으면서 내려놓는다는 생각을 가져본 것이 제 삶에 좋은 보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