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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날*^*

홍승표 2012. 5. 8. 15:04

사무실엘 나왔더니 아담하고 예쁜 카네이션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습니다. 어버이 날이라서 누군가 사다 놓은 듯했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새삼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는 21년前 예순 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셨지요.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신 어머니는 14년을 외롭게 사시다 일흔 다섯에 아버지 곁으로 가셨습니다. 어버이 날을 앞두고 장인, 장모님 점심을 모시면서 문득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 생각에 잠시 울컥했었지요.

 

 

우리네 부모님들이 거의 그러했지만 어머니는 평생을 고생만하시다가 돌아가신 정말 불쌍한 분이라는 생각이 절절하기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시골로 시집 와 그리 많지 않은 땅을 일구면서 6남매를 키우고 공부시키는 일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지땀을 흘리며 땅을 일구고 날품팔이까지 하시면서 저희 6남매를 고등학교이상 공부를 시키셨습니다.

 

물론 많지도 않은 땅을 팔아가면서까지 억척스럽게 공부를 시키신 부모님은 마을사람들에게서 제 정신이 아니라는 손 까락 질까지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은 미련스러우리만치 우리를 가르치시느라고 허리띠를 동여매시며 버거운 삶을 지탱해 가셨습니다. 코흘리개였던 저는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마워 학교수업이 끝나면 책가방을 마루에 내던지고 부모님의 일을 도우며 하루해를 보내곤 했습니다. 부모님은 이런 나의 모습을 대견스럽게 바라보시곤 했지만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쉬며 일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도무지 꾀를 부릴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일찌감치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군에서 제대한 형과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학진학의 꿈은 두명의 남동생들을 대학에 보내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질 무렵, 아버지께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팔자가 피려고 하니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정말 지지리도 복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홀로 되신 어머니는 망연자실 그동안 많은 질곡의 세월을 눈물로 보내셨습니다. 말년에는 당뇨에 시달리면서 약간의 치매증세 마저 보이시곤 했습니다. 7년 전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 할 때 만 해도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입원 석달만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모시고 돌아서는 뒷전으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뒷덜미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참으로 어렵게 살아오신 두 분이 남긴 물질적 유산이라곤 집 한 채와 논 몇 마지기뿐이었지만 정신적인 유산은 더없이 소중하기만 합니다.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동네사람들과 더없이 사이좋게 지내셨고 어머니와도 특별히 다투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어머니도 많이 배우지는 못하셨지만 오직 아버지와 자식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이신 참으로 고마운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마음은 더없는 부자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그 당시 우리 시골동네의 다른 부모님들처럼 고생을 덜하시려고 우리 6남매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도 평범한 농사꾼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더구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우리들과 이웃을 위해 보여주신 부모님의 헌신적인 삶의 자취는 죽을 때까지 큰 교훈으로 마음속에 살아 숨 쉴 것입니다아마도 지금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세상사 모두 잊고 그동안 못다 한 사연들을 엮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지내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늘나라에는 이승과 달리 걱정이나 근심 같은 건 없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버이날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누구나 한결같을 것입니다. 노래 꽃구경을 들으면 정말이지 가슴이 저리고 목이 메어 듣지를 못할 지경이지요. 꽃구경은 이렇습니다. 아들의 등에 업혀 꽃구경 가던 어머니는 마을과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그만 말을 잃어버립니다. 고려장하러 가는 길임을 직감하신 것이지요. 사는 것이 너무도 버거워서 어머니를 고려장 할 수밖에 없는 아들의 마음을 읽은 것입니다. 어머니는 솔잎을 따서 길에 뿌리며 가지요. 아들이 뭐하냐고 물으니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때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자신을 버리러가는 아들을 원망하기는커녕 돌아갈 길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지요. 어버이날은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이 정말 뼛속까지 사무치고 또 사무치는 날입니다. 자식이 봉양하려 하지만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子欲養而親不待)는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사는 것이 힘겨울 때 가끔 부모님 묘소를 찾아 넋두리를 늘어놓을 때가 있습니다. 돌아가셨어도 부모님께서 도와주실 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지요. 죽을 때까지 어버이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하늘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백년 죽어 백년 한결같은 어버이지만 기왕이면 살아 계실 때 잘해드려야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어젯밤엔 달이 유난히도 밝고 그 빛이 더없이 그윽하기만 했습니다. 그 달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돌아가신 부모님의 얼굴이 함께 보여 아린 마음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다 돌아섰습니다. 정말 복도 없이 고생만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아무 걱정 없이 하늘나라에서 지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지금은 훗날 저도 부모님과 함께 고생 없이 지낼 수 있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그저 간절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