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대만 고궁박물원에서*^*

홍승표 2012. 6. 19. 14:46

翠玉白菜를 보고

 

대만은 우리나라와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공산주의로 인해 민족이 갈라서는 아픔을 겪은 '同病相憐'에 일본 육사 선후배인 박정희-장개석 양국 지도자간의 개인적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자유중국으로 불리던 대만은 적어도 국교가 단절되기 80년대까지만 해도 血盟에 가까운 우방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한국을 싫어하고 일본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지난 1992년 우리나라가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중국과 전격적으로 수교하면서 '가깝고도 먼 나라'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우리나라가 국교 단절 때 서울 명동 거리에 있던 대만 대사관을 폐쇄하고 그대로 중국 대사관으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대만 국민들은 이 장면을 TV로 지켜보며 피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속으로 칼을 갈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최근 첨단 산업 분야에서 한국의 대기업들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한국의 GNP 등 국력이 대만을 추월하기 시작하자 대만인들은 이제 한국에 대해 시기와 질투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지요. 한류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도 '대륙인'을 자처하는 대만인들에겐 거슬리는 일일 것입니다.

 

(대만 고궁박물원 전경)

이런 대만을 사흘간 다녀왔습니다. 新北市花蓮市 일대의 101빌딩 전망대와 太魯閣 峽谷, 고궁박물원 등을 돌아보았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을 좋아하진 않지만 겉으론 내보이지 않는 듯 했습니다. 오히려 담담한 몸짓에 서두르지 않는 대륙기질이 엿보이더군요.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중국 8천년의 장대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있다는 사실이었지요. 그곳이 바로 대만 고궁 박물원입니다.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곳이지요. 蔣介石毛澤東 공산정권에 패해 대만으로 건너가면서 실어 나른 60만점 넘는 보물이 바로 그 곳에 있었습니다. 모택동이 보물을 배에 싣고 가는 장개석을 죽이려고 했지만 보물이 아까워 주은래의 충고대로 배를 폭파 시키지 않았다지요. 보물이 장개석을 살렸고 지금은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그 보물들이 대만을 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보물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 장개석이나 보물을 지키려 장개석이 탄 배를 공격하지 않은 모택동 모두 대단한 偉人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北京 고궁박물관이 90만점의 소장품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 과 수준, 가치에 있어서 대만 고궁박물원에 견줄 것이 못된다고 하지요. 중요한 문화재는 모두 대만으로 실어왔다는 겁니다.

 

(대만 고궁 박물원내 국부 손문선생 흉상앞에서)

고궁박물원에 상설 전시되는 유물은 2만점으로 3개월마다 1번씩 교체 전시되고 있다지요. 60만 넘는 소장품 모두를 관람하려면 8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대단한 물량이지요. 유물들은 20개의 전시실에 전시되는데 전시실의 설계와 조명은 관람객들이 작품 감상을 하기 편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대 순에 따라 배치된 전시장 입구에는 세계 문화사의 장구한 흐름과 중국 5천년 역사를 비교하는 연표를 만들어 놓아 중국의 역사가 곧 세계사의 중심이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중국본토는 아니지만 8천년의 장구한 중국 역사가 이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본토에서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있다지요. 아마도 이 유물들을 보며 언젠가는 결국 우리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공정이라는 청동기로 만든 작품, 안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유물을 찾는 관광수입만으로도 대만 국민들이 200년간 놀고먹을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유산이라고 하더군요. 청동기 유적인 毛公鼎  주나라 선왕이 7세에 즉위하자 그 숙부인 모공에게 도움을 청하고 모공은 선왕을 도와 근면하고 공정하게 나라를 다스렸고  그의 500胛骨글자를 새겨  선왕이 하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글은 알 수 없었지만 그릇은 단아하지만 웅장한 기운이 감돌고 유려한 아름다움이 오랫동안 눈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비쇼 동물은 머리는 , 날개는 鳳凰, 말의 몸통을 하고 사슴의 다리를 가진 상상의 동물상이더군요. 십여 센티 조금 넘는 그리 크지 않은 작품인데 邪惡한 것을 물리치는 동물이라 합니다. 황제의 중요한 소장품 이었으며 입은 있으나 항문이 없고 복이 들어오고 재물이 모인다하여 요즘엔 가게 사무실 등에 장식한다지요.

 

(이병철 회장이 소장하고 싶어 했다는 취옥백채)

대만 고궁 박물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翠玉白菜라고 합니다. 이 보물은 상시 전시되는 유물 중 삼대 보물로 손꼽히고 있다지요. 배추한포기 위에 메뚜기 두 마리가 눈망울을 굴리는 이 작품이 바로 翠玉白菜라 불리는 고궁박물관에 있는 유물 중 최고 걸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청의 태조가 명나라 匠人에게 부탁하여 만든 것인데 안 만들면 모든 친척을 한다하고 만들자니 賣國奴가 되는 처지라 고민하다가 푸르고 흰 의 특성을 살려 기발한 생각을 담아냈다지요. 배추아랫부분은 하얀색의 으로 나라, 푸른 잎은 나라를 염두에 두고 빚어내 두 마리의 메뚜기가 잎사귀를 갉아 먹어 청이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비취 빛 특유의 청아한 녹색과 맑고 밝은 흰색을 조화시킨 이 작품은 흰 부분은 순결을 의미하고 배추 잎에 붙어있는 메뚜기는 多産을 상징하기도 한다지요. 한 덩이의 을 저리도 완벽하게 배추로 빚어낸 匠人의 손길이 경이로울 뿐이었습니다.

                           

(한 포기 배추위에 메뚜기가 앉아 있다)                   

이병철회장이 관장의 안내로 고궁박물원을 돌아본 뒤 다시 翠玉白菜 앞에 서서 물었다지요. “이 작품은 얼마나 갑니까?” 정말 갖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지요. “이 유물을 팔수도 없고 가격 또한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가격은 있을게 아닙니까?” 한참을 망설이던 박물관장이 답했다지요. “제주도와 맞바꾸자고 하면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팔지 못하겠다는 말이었지요. 결국 이 회장은 헛헛한 웃음을 날리며 돌아섰다는 일화가 전해진다고 합니다. 어찌 소장하고 싶은 유물이 이뿐이랴 마는 그만큼 翠玉白菜가 기막힌 傑作이라는 사실을 방증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아를 깍아 원형의 구멍에 다시 16개 원형의 조각을 한 작품) 

를 깎아 16개의 공을 만든 작품도 대단합니다. 주먹보다 조금 더 큰 공에 청 구름과 용 문양의 공 모양을 빚어냈는데 자그마치 16개의 공을 새겨 넣었다니 참으로 不可思議한 일입니다. 가경황제가 명하여 시작했으나 가경은 보지도 못한 채 눈을 감았고 3대에 걸쳐 완성 되었다지요. 복숭아씨 속에 108나한을 조각한 작품도 있고 동파육옥은 흡사 돼지고기 한 덩이를 삶아 놓은 것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걸작이었습니다. 한 덩이의 으로 흑곰과 백곰을 나란히 빚은 작품도 있고 코뿔소의 뿔로 새긴 작품과 도자기들, 청동기와 옥으로 빚어낸 작품들이 발길 닿는 곳마다 수많은 유물들이 저마다 다른 기품을 뽐내며 반겨주고 있더군요. 이곳의 유물은 대만의 자랑이자 인류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대만 고궁박물원엔 중국 역사의 전통과 삶의 향기가 가득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중국을 알려면 대만 고궁박물원을 찾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동파육옥이라는 작품으로 한덩이의 돼지고기를 삶아 놓은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