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한택식물원에서*^*

홍승표 2012. 11. 22. 09:38

 

용인 땅 백암에는 한택식물원이 있습니다. 20만평이 넘는 이곳은 만 여종의 식물을 보유한 국내 최대의 종합식물원이지요. 한택식물원을 만드신 분은 식물학자 이 택주 원장입니다. 35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식물원을 위해 모든 걸 바치신 분이지요. 산자락 자연환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많은 희귀식물을 심고 가꾸면서 일생을 보낸 분입니다. 이곳은 주제별로 식물 군락이 조성되어 있지요. 자연스러운 멋을 지닌 자연 생태 원, 수생식물원을 비롯해 모란 작약 원, 원추리 원, 아이리스원 등 다양한 품종의 식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름 모를 꽃과 나무와 풀잎에서 뿜어져 나오는 풀꽃 향기 가득한 그런 세상을 만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특히 바오밥 나무가 있는 호주온실, 남아프리카온실, 중남미온실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개성만점의 식물을 만날 수 있지요.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정원,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야외공연장은 식물원의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계절 따라 열리는 봄꽃페스티발, 가을페스티발 등의 축제가 식물원의 볼거리와 즐길 거리의 기쁨을 더해주고 있지요. 원예 조경 학교, 자연생태학교, 가족생태체험여행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식물에 대한 이해와 함께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통해 푸르고 싱그러운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말이지요.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라 훌륭한 학습장소로도 좋은 곳입니다.

 

소설 '어린왕자'에는 "내가 사는 별은 너무 작아 덩치 큰 바오밥 나무가 자라면 별이 산산조각 나고 말거야" 라며 걱정스럽게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어린왕자의 걱정을 덜어주듯 소행성의 바오밥 나무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정원이 있지요. 호주온실이 바로 그곳입니다. 이곳에선 높이가 7미터나 되고 둘레만 해도 3미터가 넘는 바오밥 나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택식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나무 중 하나지요. 바오밥 나무는 굵은 줄기에서 뿌리 모양의 가지들이 뻗어 나와 마치 거꾸로 심어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바오밥 나무가 자기가 나무의 왕이라고 잘난 체 하자 신들이 노여워하여 나무를 뿌리째 뽑아 거꾸로 심어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지요.

 

호주에서도 나무가 띄엄띄엄 서있는 풀밭에서 자생하는데 비올 때 물을 저장하여 가뭄을 견디는 생태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물병나무(Bottle Tree)라고 부르는 것도 배가 불룩한 나무 모양에서 온 것인데 호주 원주민들은 이 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하여 물로 쓰기도 한다지요. 10년 전 호주에서 들여온 바오밥 나무 3형제는 부쩍 가지를 뻗으며 온실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바오밥 나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지요. 바오밥 나무는 우리나라 고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배흘림기둥과도 비슷해 친근감을 더해줍니다. 동물에서 등에 물을 저장하는 낙타가 있는 것처럼 식물에선 바오밥 나무가 그런 셈이지요.

 

한택식물원의 단풍은 다양한 종류와 모양이나 다채로운 색깔로 산자락을 색동옷으로 단장합니다. 복자기, 섬 단풍, 당 단풍 등 우리 토종 단풍나무도 그렇지만 캐나다와 중국 단풍 등 300종이 넘는 단풍나무가 보여주는 독특한 모양과 색들은 저절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해주지요. 나무전체가 빨갛게 물이 들어 마치 불타는 듯 강한 인상을 주는 落羽松은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이 나무의 단풍도 그렇지만 물속에서 자라는 모습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물 한가운데서 솟아있는 낙우송을 보면 저절로 아름답다는 탄성이 쏟아져 나오지요. 떨어진 낙엽이 물위를 떠다니며 황금빛으로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은 가히 환상입니다. 연못엔 물만 있는 게 아니지요. 하늘빛이 담겨 있고 산자락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한 폭의 빼어난 수채화가 담겨있습니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杜牧山行이라는 한시에 "霜葉紅於二月花(서리 맞은 잎이 2월의 꽃보다 더 붉다.)" 는 구절이 있습니다. 2월의 꽃은 동백꽃을 두고 한말이지요. 붉게 물든 단풍이 동백꽃보다 더 붉다. 라는 표현은 시인만의 상상력이 가져다 준 보물 같은 구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에 동백꽃 군락지도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란다지요. 동백꽃이 핀다는 건 많이 따뜻해진 기후환경을 반증해주는 듯합니다. 만 여종의 식물을 다 아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지요. 그런 사람은 가히 국보급 보물 같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이 택주 원장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그런 그분이 강경하게 쓴 소리를 해 깜짝 놀랐지요. OECD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식물원법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며 목소리를 높인 것입니다.

 

대학에 식물학과도 없고 식물을 연구하는 학자도 많지 않다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더군요. 식물원법이 없고 식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없으니 보통 큰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OECD에 가입된 나라이고 국력의 규모로 봐서도 부끄러운 일인데도 누구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오죽하면 아들에게 를 물리기로 했고 실제로 한택 식물원에서 일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지요. 두 번이나 바오밥 나무가 검열에 걸려 반입하지 못했던 일을 비롯해 35년간 그가 겪은 사연은 만리장성을 쌓고도 남을 거라고 합니다. 그만큼 그동안 겪어온 일들이 힘들었다는 말이겠지요. 그래도 이젠 아시아에서 알아주는 식물원이 되었고 우리나라 식물학회에서도 내로라하는 거물(?)이 되었다며 너털웃음을 날렸습니다. 외국학자들과도 많은 교류를 한다는군요. 좋은 결실이 맺어졌으면 합니다.

 

늦가을에 찾은 한택식물원은 그 나름의 정취와 멋이 있었습니다. 조용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에 자연과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가을의 끝자락이었지만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좋은 곳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 느낄 수가 있었지요. 발길 닿는 곳마다 소중한 자연과 함께 한 것은 더없이 싱그럽고 상큼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야생식물과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가만히 귀 기울이니 새소리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환상의 하모니로 어우러져 아늑하고 평온한 세계로 이끌어 주더군요. 이곳에 들면 자연을 배우고 자연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지요. 사람은 사람을 속일지 몰라도 자연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 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자연과 함께 소중한 삶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