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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에서*^*

홍승표 2012. 11. 27. 16:54

 

호남의 소금강이자 호남 5대 명산으로 손꼽히는 월출산엘 들었습니다. 4년 전 월출산을 찾은 적이 있었지요. 영암 부군수의 초청으로 이틀간 영암 일원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구름다리까지 오르곤 포기를 했었지요. 다른 분들이 힘들다고 내려가자는 바람에 막내 격이었던 저 역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하산했던 것입니다. 구름다리에서 바라본 월출산의 정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둥글둥글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정경이 금강산보다 더 절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정상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있던 이유입니다. 꼭 한번 월출산엘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늘 가슴 한구석에 담겨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시청 산악회에서 월출산을 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찌감치 신청을 해놓았지요.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만들던 아내가 한마디 날리더군요. “소풍가? 너무 들떠 있는 것 같은데 무리하지 말고 조심하셔...” 정말 초등학교 때 소풍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언젠가 꼭 한번 가고 싶다는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버스에 오르자마자 마음은 이미 월출산에 들어가 있었지요. 道岬寺에 도착한 건 11시가 넘은 시각이었지요. 도갑사는 신라 4대 고승의 한 분인 道詵國師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집니다. 가람배치가 잘 되어 있고 국보 50호인 解脫門을 비롯해 많은 보물과 문화재가 있는 유서 깊은 고찰로 유명한 곳이지요. 도갑사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월출산은 소백산계의 무등산 줄기에 속한 산으로 해발 809m로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매우 크고 수려한 산으로 유명하지요.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1973道岬山 지역을 합하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8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고 합니다.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 하여 월나산, 고려시대에는 월생산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으로 불려왔다고 합니다. 천황봉을 주봉으로 구정봉, 사자봉, 도갑봉 등이 동에서 서로 이어져 산맥을 이루는데 기암절벽이 즐비해 예로부터 신령스런 으로 손꼽혀 오던 곳이라지요. 九井峯엔 아홉 개의 웅덩이가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아 아홉 마리의 용이 산다고 합니다.

 

월출산 자락에는 도갑사와 무위사 등의 사찰과 마애여래좌상이 있고 치솟은 바위 봉우리가 절경인데다 골짜기를 따라 폭포와 유적들이 많이 있고 곳곳에 수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지요. 특히 120m 높이에 놓인 구름다리는 길이가 50m가 넘어 우리나라 등산로에 놓인 구름다리 중에서 가장 길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월출산 산자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외감을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암에 관한 것이라지요.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動石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 바위가 바로 靈巖인데 이 바위 때문에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하여 고을 이름도 영암이라 하였다는 것이지요.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헤맨 산행 끝에 天皇峯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올망졸망한 산자락들과 짙푸른 하늘, 정처 없이 떠도는 흰 구름까지 환상적인 정경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런데 더욱 기막힌 그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커다란 낮달이 푸른 하늘에 떠 오른 것이지요. 한참을 바라보다 그에게 물었습니다. 잘산다는 게 무언지를 말입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으며 저를 바라보더군요. 아마도 스스로 깨우치며 살아가라는 듯 그렇게 말입니다. 정상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정상을 지키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누구나 정상에 오르면 남은 일은 내려가는 일밖에 없는 게 순리이기 때문이지요. 산에 드는 일은 인생살이와도 같습니다. 철저히 준비한 사람만이 산을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산을 내려오는 길은 가파르고 험했습니다. 계단이 없었으면 큰 고생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 힘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지요. 가진 걸 내려놓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는 말입니다. 가파른 길을 내려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허리춤에 차고 구름다리를 건너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구름다리에서 병풍처럼 둘러싸인 바위들을 보면서 다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눈길을 돌릴 수가 없더군요. 월출산을 만난 것이 너무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구름다리아래 펼쳐진 까마득한 계곡조차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오히려 뛰어 내리면 살며시 안아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구름다리를 건너야 하는 게 정말 싫었지요.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면서 싱그럽고 풋풋한 마음을 잃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해보았습니다.

 

 

산에 들면 산을 보지 못합니다. 나무와 돌과 꽃과 바람과 새소리, 하늘과 구름을 만날 수 있지만 산을 만날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산에 들면 어느새 산의 일부가 된다는 말입니다. 산에 들면 세상사는 게 참으로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듭니다. 서로 다투고 헐뜯고 시기하며 아옹다옹 산다는 게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렇게는 살지 말고 산처럼 바람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입니다. 산의 氣運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지요. 세상의 온갖 근심걱정이나 버거운 삶의 더께가 한순간에 씻겨 져 내리는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산을 내려오면 산에서 생각했던 그런 삶을 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가끔씩 산에 들어 를 받으며 이러한 초자연적이고 원초적인 마음을 가져본다는 게 행복한 일이지요. 산을 만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