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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홍승표 2013. 4. 29. 13:30

 

어느 대기업 임원이 미국 출장 중 기내에서 여 승무원을 폭행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품격을 갖춰야 할 지도층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급기야 네티즌들이 신상 털기에 나서 그의 인적사항이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달 상무로 승진해 처음으로 일등석을 타보니 기고만장 뵈는 게 없었던 모양입니다. 급기야 미국 FBI가 출동했고 귀국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지요. 어느 군수가 군청 예산으로 자기 땅에 축대를 쌓은 게 말썽이 되기도 했습니다. 자격이 없고 완장을 권력으로 아는 사람이 완장을 차면 문제가 생기고 세상이 시끄러워지는 게 세상이치인 것이지요.

 

해마다 시민의 날엔 지역에서 봉사하고 지역을 빛낸 사람을 문화상 수상자로 선정해 시상합니다. 어느 시의 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긴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 문화상 심사위원회를 주관하게 되었지요. 저는 아직 후보자들을 알 수 가 없어 회의 운영만하고 평가는 하질 않았습니다. 그게 공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문화상 심사가 공정치 않았다고 항의가 들어왔다는 것이지요. 탈락된 사람이 밤중에 시장께 전화로 항의를 하고 자신으로 번복되지 않으면 가맹경기단체장을 그만두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요.

 

제가 일갈했습니다. “그런 정도의 근량을 가진 분은 단체장 자격이 없다.” “봉사가 생명인 단체장 자리를 무슨 벼슬로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건 시민들이 불행한 일” 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지요. 단체장의 수준이 그 정도라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회단체장은 봉사를 하는 분들입니다. 더구나 체육 단체장은 더더욱 그러하지요. 그런데 문화상 수상자로 선정이 안됐다고 해서 단체장을 그만두겠다고 엄포(?)를 놓은 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수상자로 선정된 분도 단체장이고 객관적인 공적이나 경륜을 봐도 공정한 심사결과였는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 상황실 사진을 보고 세계인들은 입을 모아 이것이 미국의 힘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공군 준장이 중앙에 앉아 있고 오바마 대통령은 작은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요. 힐러리 클린턴 장관 등 다른 장관들도 옆자리에 비켜 앉아 있거나 서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대통령은 어느 자리에서든 중앙 상석에 앉는 게 머릿속에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네 완장 찬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대접받기를 원하지요. 심지어 외국에 나가서조차 그런 일이 심심찮게 벌어져 망신을 당하기도 하지요.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도 자리다툼을 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에게 양보하고 배려하지요. 일정한 자리에 오르면 그 자리에 걸 맞는 인격이 뒤 따라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현직을 떠나면 누구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직도 자신이 현직이라는 착각을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아마도 자리 때문에 고함과 삿대질이 오가고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리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겁니다. 자석 배열이 잘못 됐다고 지위나 인격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닌 듯합니다.

 

사람들은 때로 “ 사람이 완장 차더니 완전히 달라졌어.”라는 말을 푸념처럼 내뱉곤 합니다. 평소엔 안 그랬는데 일정한 지위에 오르더니 달라졌다는 말이지요. 세상에 완장 찬 사람치고 거들먹거리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축사를 시키지 않는다거나 자석배열이 잘못됐다고 고함을 치며 행사장을 떠나는 완장을 수없이 보았지요. 통, 리장, 주민자치위원장직을 완장으로 여기는 분도 보았습니다. 처음엔 안 그랬다가 사람들이 예우를 해주니 자기도 모르게 변하고 완장을 벗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다 잘못되는 일도 생기지요. 자격 없는 사람이 완장을 차기 때문일 것입니다.

 

완장은 사회 공익과 질서 유지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상징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완장을 차면 다른 사람들이 받들어 모시고 예우를 해주니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는 착각과 탐욕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꿀맛을 맞보면서 이성을 잃게 되고 마약과 같은 중독현상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완장이 갖는 상징성은 중요하지요. 완장을 지켜야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완장을 달아준 사람들을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완장을 권력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이지요. 완장을 찰 사람이 차고 완장이 완장답게 쓰일 때 세상이 바로 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