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乙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입력 : 2013.10.0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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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승표 / 용인시 부시장
며칠 전 상공회의소에서 기업 대표들을 만나 고충을 듣는 자리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대부분 기업인이 공무원들의 무사안일한 자세를 질타하고 있었다.
한 여성 기업인은 울먹이며 공장을 새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겪은 애환을 토로했다. “3만5000㎡ 부지를 확보해 공장을 이전하는 데 14개월이나 걸렸다”는 발언은 듣기 민망했다. 부지 안에 있는 나무를 베는데 담당 공무원이 안내를 잘못해 3번이나 재작업을 했고, 개발 부담금도 개발 이후의 가격을 잘못 적용하는 바람에 재심의를 청구해 겨우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런저런 이유와 서류 보완으로 인허가에만 1년 이상 걸렸는데 도대체 공무원이 누굴 위해 존재하느냐”며 분개했다. 정말 부끄러웠다.
"수변 지역에는 공장 증축이 어려워 다른 지자체에 있는 건물을 임차해 사용하고 있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불만도 있었고, “공장 부지를 매입하면서 법인이라 농지를 취득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개인 명의로 땅을 매입했다가 강제 이행금을 물게 생겼다”는 이도 있었다. “농지로 사용하지 못하는 땅을 주차장으로 쓸 수 있도록 해달라” “소규모 공장에 폐수처리장을 설치하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것 아니냐” 등 각종 건의가 쏟아졌다.
우리 시(市)는 교통 여건이 좋고 고급 인력이 선호하는 지역이라 기업 차원에선 경쟁력이 있는 지역으로 손꼽히는데 공무원이 문제라니 보통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영원한 ‘을’인데, ‘갑’으로 착각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아닌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고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가 내놓은 각종 시책이 무색하다 못해 무용지물이었구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기업인들은 공무원이 절대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했다. 기업인과 공무원 사이의 간극(間隙)이 너무 크다는 걸 절감한 순간이었다. 흔히들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공무원의 힘이 컸다고들 한다. 그러나 기업인들이야말로 우리나라 발전을 이끌어 온 주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은 개방과 공유, 협력을 넘어 정책 개발에도 기업인을 참여시켜야 할 시점이다. 나부터 기업인들의 질타와 충고를 받아들이고 진정한 ‘을’로서 역할을 해갈 것을 다짐한다. (조선일보. 2013, 10,8일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