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善은 물 같은 것
세상은 가끔 안 개 속에 잠깁니다. 연초록으로 꽃단장한 팔당호반도 안개에 잠겨 있었지요. 온 누리가 풀꽃 향기로 뒤덮인 날, 봄빛 가득한 비가 내렸는데 그조차 안개비였습니다. 고즈넉한 팔당호엔 반가운 손님이었지요. 그 한가운데 떠 있는 섬들은 비를 맞으며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원래 섬이 아니었지요. 팔당댐 건설로 일대가 물에 잠기고 높은 오름이 물 위에 떠올라 섬이 된 것입니다.
팔당 호반 ‘분원 마을’은 조선 시대 왕실 도자기를 굽던 본산으로, 백자의 본류입니다. 조선 500년 도자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지요. ‘분원’이란 사옹원 제작소입니다. ‘사옹원’은 조선 때에 궁중 음식을 담당한 관청을 말합니다. 음식을 담는 자기를 제작해 공급하기도 했지요. 관영 자기도 제작했는데, 나중 ‘분주원’이라 개칭했지요. 그러나 마을은 개칭 전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여유당’은 ‘망설이면서 냇물을 건너듯이,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이’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낮은 몸짓으로 살라는 말이지요. 跏趺坐를 틀고 앉아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허허한 가슴이 가늠할 수 없는 희열로 가득 차오릅니다. 물은 얕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순리. 팔당이 스스로 낮추었기에 강원도 검룡소(劍龍沼)나 금강산에서 발원된 물이 모여드는 것이지요. 사람 사는 이치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팔당은 늘 해맑고 상큼한 얼굴, 쪽빛 자태, 오롯한 향기로 살아가지요. 이곳에 들면 어느새 다산의 숨결과 자연의 경이로운 몸짓에 빠져들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자신을 낮추어 물을 받아들이는 철리를 느낄 수 있지요.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 그거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몸을 낮추면 세상이 새롭게 보이고 스스로 거듭나게 되지요. 늘 낮은 몸짓으로 여 여하게 사는 걸 팔당 호반에서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