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산업을 살려야합니다.*^*
30년 전쯤 일입니다. 고향마을에 3代에 걸쳐 面長을 지낸 집안이 있습니다. 그 권위나 예우가 많이 退色되었지만 그래도 시골에선 면장이 가장 큰 어른으로 대접받는 기관장이지요. 저의 형도 고향마을 면장으로 5년 넘게 일하고 시청 국장으로 일했는데 공직을 떠난 지금도 국장이 아닌 면장 댁으로 불리 울 만큼 면장은 상징성 있는 자리입니다. 오죽하면 면장도 논두렁 氣라도 타고나야 된다는 말이 생겨났을까요. 그만큼 지역 어른으로서의 이미지가 도시지역 洞長하고는 그 次元이 다른 것이 사실입니다. 어쨌거나 고향마을 면장을 3대에 걸쳐 지낸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기자로 일하는 동생에게 말했더니 눈이 반짝거리더군요. 기자입장에선 좋은 취재 감이라는 생각을 가진 듯 했습니다. 사진기자와 함께 고향 면사무소를 찾아 면장님과 인터뷰를 한 것입니다. 그분의 先親은 우리 마을에 중학교도 설립했고 지역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신 분 ...들 이었지요. 동생도 취재를 하면서 그분도 주민들의 존경과 信望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 면장께서는 지역 후배가 멀리까지 와 고생했다며 동생에게는 도자기를 주고 사진기자에게는 쌀 한말을 주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 당시 쌀을 사먹던 동생은 도자기보다는 쌀이 더 좋아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도자기와 쌀을 바꿔 갖게 되었다는군요. 쌀이 좋아서인지 밥맛이 그만이었다고 합니다. 며칠 뒤 면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더랍니다. 기사 잘 써줘서 고맙다면서 “도자기는 잘 보관하고 있느냐?”고 물으시더라는 것이지요. 얼떨결에 “네! 그럼요”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그런데 한 말씀을 더하셨는데 기가 막히더랍니다. “ 그거 잘 보관해 쌀 한가마니는 되는 거야.” 뒷골이 무거워지더라고 하더군요. 그 도자기의 가치가 그 정도인줄 몰랐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 사진 기자를 보면 가끔 물어본다고 합니다. “ 그때 그 도자기 잘 갖고 있어?”
그렇습니다. 광주와 이천, 여주지역엔 도자기를 굽는 匠人들이 많이 있습니다. 원래 광주에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를 굽던 관요가 있었다지요. 지금도 그 마을은 分院으로 불리고 있지요. 최근 들어 이들 지역의 도자기가 재조명된 것은 세계 도자기 엑스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01년 경기도에서 의욕적으로 3개 시군지역에서 세계도자기 엑스포 행사를 열었던 것이지요. 세계도자기 엑스포는 한국 도자의 지위 회복과 도자 문화예술을 널리 알리고 도자와 어우러진 문화관광산업을 진흥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그 열기가 식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행사규모도 축소되고 국민적 관심도 역시 떨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靑瓷만 하더라도 강진에서 더 활발한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무언가 돌파구를 찾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친근한 도자기 사람들이 찾는 도자기를 만들어야겠지요. 반도체나 휴대폰 같은 경쟁력 있는 작품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도자기의 수준과 가치를 높이는 일, 그것이 우리나라 도자 산업의 내일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