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상황에 휩쓸려 따라가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물론 본인 의사가 內在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뒤따르긴 하지만 그 굴레를 벗기 어려운 상황이 있기 때문이지요. 가끔 주례를 맡을 때가 있지만 주례를 할만큼 잘 살아왔느냐 하는 의문부호를 던지게 됩니다. 새롭게 사랑의 보금자리를 꾸미는 그들에게 있어 과연 저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졌을까 하는 것이지요. 또한 앞으로 그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하는 것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랑신부가 주례사를 듣고 정말로 잘 살아야하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했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인생이 시험지처럼 정답이 있는건 아닙니다. 답이 있어도 다 아는 사람은 없지요. 살아보니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가면 되지요. 어려움이 닥칠 때 서로 격려해주고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동...반자, 그게 부부입니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런 말을 통해 두사람이 정말 축복받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축원해주고 있습니다. 주례 그거 함부로 응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주례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경륜과 덕망을 갖춘 사람이 해야 제격이지요. 의미있는 일이지만 주례가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라는 절감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봄 절친의 아들 결혼식 주례를 맡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친구이지요. 처음엔 저보다 훨씬 저명한 인사를 많이 알고 있을거라는 생각에 固辭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 한마디가 匕首처럼 가슴에 날아들었지요. “우리 아들을 가장 잘아는 사람이 승표 형이잖아” 저도 존경하는 친구에겐 이름뒤에 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부르지요. 그 한마디에 바로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주례 그거 간단한 일이 아니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례를 하고 나면 제 스스로 정말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해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또 다른 나를 깨우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