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잇돌이 있었습니다. 평평한 만들어진 것인데 옷감을 올려놓고 다듬이 방망이로 두들겨 펴는 도구였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려웠던 시절, 우리네 어머니들이 말 못할 심정을 달래는 도구이기도 했지요. 다듬이질 할 때 내려치는 소리엔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배어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다듬이질 소리를 들으며 다듬이질 하는 어머니들의 심정을 가늠할 수 있었지요. 다듬이질 소리엔 어머니들의 고달픈 삶의 애환이 구구절절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다듬이질은 우리네 어머니들의 애환을 녹이는 절규이기도 했지요. 그 어머니들은 케케묵은 家父長과 男尊女卑라는 관습에 억눌리고 시어머니 시누이 시집 식구에게 억눌려 말못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지요. 그 울분을 분출하지 못하고 恨으로 맺히기 전에 분출시킬 수 있는 것이 다듬이질이 아니었나 합니다. 다듬이질 소리가 깊은 밤일수록 요란했던 것은 그만큼 많은 사연이 구구절절했기 때문입니다. 그 소리는 어둠을 뚫고 온누리에 메아리쳤지요.
교교한 달빛을 타고 흐르는 다듬이질 소리는 제법 운치있는 가락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주앉아 양 손에 방망이를 들고 밀어치고 당겨치는 그 소리는 가히 절묘하고 신명나는 가락이었지요. 다듬이질은 마음이 하나 되지 않으면 속도와 박자를 맞출 수가 없습니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두 여인이 한 집안에 시집 와서 시어머니가 되고 며느리가 된 것은 운명이었지요. 어쩔 수 없이 고운 정 미운 정이 서로의 가슴에 쌓이고 뭉쳤을 것입니다.
겨울밤이면 화롯가에 둘러앉아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까먹으며 다듬이질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저희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으셨지만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다듬이질로 지치셨다는 걸 눈치 챌 수가 있었지요. 잠시 쉬면서 함께 군고구마를 드시던 어머니는 가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이 때로 꿈결 같이 느껴지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스르르 세상모르게 잠이 들곤 했습니다.
달빛 皎皎한 마루에 앉아 다듬이질을 하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이 신비롭기도 했지요. 때로 방망이소리가 커지면 무언가 못마땅하거나 화나는 일이 생겼구나하는 짐작을 했습니다. 다듬이질로 다져진 옷감은 우리 가족의 옷이 되어 입혀졌지요. 어머니의 손길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그 따스한 사랑이 있어 가난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젠 다듬이질 소리가 유년의 기억 속에 추억으로 남아있지요. 지금도 가끔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가 들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