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兄! 별일 없으면 날궂이나 합시다." 모처럼 비가 비답게 내리는 날, 친구 녀석의 전화가 날아들었습니다. 옳다구나 싶었습니다. 안 그래도 폭우가 쏟아져 마음도 심란하고 출출하던 차에 잘 됐다 한 것이죠. 비가 오는 날은 을씨년스럽습니다. 아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면 괜스레 우울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그냥 혼자서 주절주절 청승을 떠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옛 어른들은 비 오는 날 부침개를 부쳐 막걸리를 벗 삼으며 세상을 達觀한 사람처럼 보냈지요. 날궂이는 이런 겁니다.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산과 들을 헤맨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이 많았던 시절, 희뿌연 비안개처럼 앞이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뾰족한 妙手도 없었습니다. 비를 흠뻑 맞으면 속이라도 후련해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염없이 빗속을 달렸었지요. 허탈함을 달래보려는 철없는 稚氣였습니다. 그러나 텅 빈 마음은 허허함 그대로였지요. 애꿎게 옷만 적시고 돌아온 것은 어머니의 호통소리뿐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가끔 비를 맞으며 청승을 떨던 일들이 지금도 젖은 옷처럼 축축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걸음에 달려간 곳은 단골집 실내 포장마차였습니다. 半白의 친구 녀석은 이미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 마음씨 좋은 아저씨처럼 실실 웃으며 앉아 있었지요. 기본안주인 계란말이와 미역국을 만나자 마자 소주 석 잔이 비워졌습니다. 사회생활에선 서너 살 차이는 친구로 지낸다고 하지요. 이 친구는 만난 지 30년이 훨씬 더 지났습니다. 나이가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 데도 兄이라고 부릅니다. 저도 그 친구 이름 끝자락에 兄이라는 호칭을 붙여 부르고 있습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존경한다는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첫인상은 그리 호감이 가는 이미지는 아니었습니다. 외모는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준수했지만 고향이 부산이라서인지 억양이 억세고 투박했지요. 툭툭 던지는 말투도 다소 거북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만날수록 정감이 가고 진국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세련된 말과 몸짓으로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오히려 질그릇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윤기가 흐르는 사람으로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래보고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고 한 어느 시인의 글귀가 떠올랐지요. 그런 사람으로 마음속에 들어온 것이지요.
가진 게 많다고 해서 거들먹거리거나 갑질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늘 한 결 같은 몸짓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존경스럽기만 했지요. 투박하던 말투도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유연하고 부드럽게 바뀌어졌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점심이나 하자는 연락을 받고 나갔더니 혼자서 덩그러니 앉아 있더군요. 무슨 일이 있나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제안을 했습니다. 아들 결혼식 주례를 맡아달라는 것이었지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는데 그 친구가 던진 한마디에 입을 다물었습니다. 형이 아들을 누구보다 잘 알잖아...
그 친구는 사업을 하고 속칭 발이 넓어서 사회적으로 이름 높은 명망가도 많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별 볼일 없는 놈에게 주례를 청하니 의외였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친구의 고민도 만만치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기는 어느 분을 주례로 모셔도 다른 분들이 섭섭해 할 수도 있으니 가까운 친구를 주례로 세우는 것이 명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렇게 친구 아들 녀석의 주례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한 편으론 많은 사람 중에 저를 주례로 세운 그 마음이 새삼스럽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궂이 자리에선 기본 세 병 정도는 보통이지요. 속칭 2차는 거의 없지만 옮기면 생맥주집입니다. 살면서 나이 적은 친구에게 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부르는 사람은 3명이 있습니다. 제 기준이지만 그런 존경스런 후배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장마가 시작됐습니다. 날궂이 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겠지요.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분야가 물 흐르듯이 순조로워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날궂이 하며 나라걱정 하는 볼멘소리가 사라질 것입니다. 빗방울 소리가 요란해질수록 마음이 고요해지는 건 세상살이가 어수선하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