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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하얀 꿈을 꿉니다.^^

홍승표 2021. 2. 4. 10:10

눈이 내립니다. 창밖 기척 소리에 문을 열고 보니 세상에 온통 눈이 쌓이고 마음이 포근해졌지요. 차가웠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합니다. 세상을 따뜻하게 덮고 또 덮는 것은 눈이 아니고 마음이지요.

눈이 맑아지고 생각이 맑아지고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세상이 온통 순백의 옷으로 갈아입는 이런 때, 길을 나서고 싶어지지요. 아무도 가지 않은 그 길엔 수많은 기억이 저마다 고개를 들고 일어나 반겨주고. 새로운 꿈과 희망을 안겨줄 것입니다.

살아가는 일이 아무리 버거워도 눈 내리는 날엔 언젠가 눈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꿈을 꾸게 되지요. 눈이 내리는 날엔 여여(如如)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넉넉함이 생겨납니다.

한 여름 날 쏟아지는 빗줄기가 더위를 식혀준다면 한 겨울 내리는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지요. 일상의 벽에 부딪혀 이러한 꿈이 모두 이루어지는 게 어렵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눈처럼 하얀 마음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는 사실 자체가 가치 있는 일 아니겠는지요. 눈 오는 날은 마음이 그러합니다.

 

따뜻하고 넉넉하고 아늑하고 겸손하고 밝고 상큼하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지지요. 산다는 사실이나 살아가는 이유 같은 것 굳이 따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입니다. 산다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는 마음이 드는 날이지요. 눈 오는 날은 그 자체로 사랑이고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눈 오는 날엔 유난히도 유년시절의 고향 산천이 아련히 떠오르지요.

조용한 겨울밤, 하염없이 눈이 내렸습니다. 눈 내리는 날은 그렇게도 조용한 것인지, 속절없이 짖어대던 강아지가 잠들고 휘몰아치던 바람 소리마저 마을 어귀 고목에 눕고…….

 

멀수록 더욱 아름다운 풍경. 문을 열고 산야를 바라보면 어느새 내 마음이 첫발자국을 남기며 이미 세상을 누비는, 참 이상한 현상. 산과 들도 그렇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이렇게 고요할 수도 있구나!’, 더없이 신기했지요. 가끔 소리 내던 소도 외양간에서 커다란 눈망울만 굴릴 뿐 아무 기척이 없었고 가끔 울리던 풍경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러다가 세상이 하얗게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뜬금없는 생각마저 들었었지요.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눈 속에 파묻혀 하얀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 좋은 꿈을 꾸곤 했습니다. 이런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일까요. 여명(黎明)이 밝아오고 두런대는 소리에 잠이 깬 후에도 간밤에 내린 눈을 쓸 생각은커녕 먼 하늘만 바라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납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발칵 뒤집혀졌습니다. 세계적으로 창궐한 이 신종바이러스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요.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되고 도시전체가 통제되는가하면 하늘길이 막히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결혼식이나 단체여행은 물론 모임이 줄줄이 취소돼 요식업계와 관광산업은 초토화되고 말았지요.

사는 게 어려워지니 재난기본소득이 지급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총선이 치러졌지요. 어쨌거나 살아가는 일이 갈수록 버거워져서인지 사람 사이에서도 대립이 점점 심해지는 듯합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일수록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관조하며 살아가는 여유가 필요하지요.

 

눈 오는 날은 바로 이런 여유가 되살아나는 날입니다. 잠시 버거운 삶의 굴레를 벗고 꿈의 나래를 펴기에 좋은 날이지요.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도 좋습니다. 꿈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눈 오는 날에는 눈이 되어 날아보고, 날다가 지치면 나뭇가지에 앉아 쉬었다가 또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 보는 거지요.

아름다운 세상은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눈 오는 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두면 좋겠지요. 그곳에 오래도록 하얀 눈이 내리고 또 내려 쌓일 것입니다. 아무리 살아가는 일이 어려워도 이 또한 자나가겠지요. 그러한 마음을 바탕으로 꿈과 희망이 쌓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간직한 내일의 꿈이 눈처럼 넉넉하게 채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