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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다듬이질

홍승표 2021. 3. 7. 14:50

다듬이질이 있었습니다. 돌로 만들어진 다듬이 위에 옷감을 접어 올려놓고 홍두깨로 두들겨 다듬는 일이었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려웠던 시절을 살던 우리 어머니들의 말 못 할 심정을 달래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다듬이질 할 때 그 내려치는 소리의 강약은 가슴 속에 숨겨져 있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지요. 사람들은 다듬이질 소리를 들으며 그 가락의 강도로 아낙네들의 심정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케케묵은 가부장제와 남존여비 관습에 얽매이고 시어머니와 시누이 등 시집 식구의 참견과 질책에 억눌려 살아야만 했지요. 말 못 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던 그 울분이 한(恨)으로 맺히기 전, 분출시킬 수 있는 것이 다듬이질이었습니다. 다듬이질 소리가 밤이 깊어질수록 요란하게 울렸던 것은 그만큼 맺힌 사연이 구구절절했다는 반증이지요.

 

다듬이질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정말로 애원하고 하소연하는 듯 들립니다. 고혹한 달빛을 타고 들려올 때는 제법 운치가 있는 가락으로 안겨들기도 하지요.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주 앉아 양손에 홍두깨를 들고 박자를 맞추어 두드리는 소리는 참으로 절묘하고, 저절로 신명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자칫 방심하면 엇박자가 나기도 하지요. 네 개의 홍두깨가 섞이다 보니 조금만 소홀히 하면 서로 부딪치기도 합니다.

 

다듬이질은 마음이 하나 되지 않으면 속도와 박자를 맞출 수가 없지요. 피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두 여인이 한 집안에 시집와서 시어머니가 되고 며느리가 된 것은 운명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숙명을 짊어지고 살다 보니 고운 정, 미운 정이 가슴에 쌓여 한(恨)이 되었을 테지요. 그래서 응어리진 한을 깨부수듯 어금니를 질끈 물고 홍두깨를 움켜잡아 내리치면서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북받쳐 남모르게 눈물을 삼키며 울었을지도 모릅니다.

 

애틋한 사연이 담긴 삶의 응어리를 한 자락 소리로 거침없이 풀어내는 다듬이질 소리는 바람을 일으키고 큰 산을 흔들었지요. 밀어치고 당겨 치고, 맺고 풀어내며 어둠을 빛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어놓고, 정처 없이 떠돌다가 다시 또 휘몰아치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꿈이나 사랑을 일깨우고 다시 돌아올 기약 없이 먼 길을 떠나버리곤 했습니다.

 

눈 오시는 밤이면 화롯가에 둘러앉아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먹으며 눈 날리듯 정겹게 날아드는 다듬이질 소리를 들었지요.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저희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지만,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다듬이질로 지치셨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잠시 쉬면서 함께 군고구마를 먹으며 어머니는 가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지요. 그 얘기가 아득하게 꿈결같이 느껴질 때 쯤 이면 스르르 잠이 들곤 했습니다.

 

다듬이질하는 할머니와 어머니 모습은 더없이 보기 좋았지요. 다듬이질 소리가 커지면 ‘무언가 못마땅하고 화나는 일이 있구나!’ 숨죽이며 지켜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일없이 일정한 가락의 다듬이질로 잘 다듬어진 옷감은 가족의 옷이 됐지요. 어머니의 손길로 만들어진 옷, 그 따뜻한 사랑이 있어 어려운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귓전을 울리는 다듬이질 소리, 달빛을 타고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에 눈을 감으면 어느새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웃음 짓곤 하지요.

 

세월이 흐르고 연륜이 더해져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의 소리를 듣는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작은 일에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는 여여 함도 얻게 되었지요. 세상이 바뀌고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진 것들이 많이 있지만 사무치게 그리운 얼굴과 귓전을 맴도는 소리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고 다듬이질 소리는 어린 시절 기억 속 고향의 소리로 남아있지만, 문득문득 어머니와 다듬이질 소리가 그리운 것은 결코 추억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