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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공'과 '어공'

홍승표 2021. 4. 21. 14:37

실장님은 안 된다고 하는 게 너무 많습니다.” 공직을 떠난 뒤, 6개월 만에 다시 공무원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도지사 당선자가 비서실장으로 일해 달라는 요청으로 그리 된 것이지요. 6개월 동안 비서실장으로 일하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정치인 도지사나 정무적인 감각으로 판단해 도지사를 보좌하는 어공’(어쩌다 선출직을 따라 공무원이 된 사람)들은 공직이 몸에 밴 저 같은 늘 공’(공채 정규직 공무원)과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었지만 저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비서실장은 정무적인 판단이 부족한 것 같다.’며 저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결이 달랐던 겁니다. 6개월이 지나 공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지요. 그래도 가끔 도정에 대한 소견을 전했습니다.

지사는 도청을 떠났는데 왜 그리 관심이 많으냐고 하더군요. 아마 참견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그저 도청에서 30년 이상 일한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말이지요. 그러던 중 후배 공무원이 자치행정국장으로 옮긴지 석 달도 안 돼 경질된다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저는 조직이 흔들 릴 수 있고, 그의 인생에 상처로 남는 일이니 정기인사 때까지 미루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지요. 하지만 그는 북부청사로 좌천됐고, 그 후, 저도 조언하는 걸 거의 포기했지요. 다만, 후임 실장에겐 전임자로서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비서실장은 지사만 보좌하는 게 아니라 행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할 줄 알아야 된다고 했지요. 하지만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인 그에겐 쇠귀에 경 읽기인 듯 했습니다.

 

선출직 공무원이나 그를 보좌하는 사람은 정무적인 감각이 필요하다는 데에 는 동의합니다. 다만, 그 정무적인 판단이라는 것이 법이나 상식을 벗어나면 사건이나 논란거리가 되기 십상이지요. 그런데 제가 만난 늘 공들은 좀 마땅치 않아도 어공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반면, 어공들은 아예 늘 공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짙더군요. 어공의 이런 행동은 자신을 일반 공무원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특권 의식 때문일 거라고 봅니다. 특히, 정치적인 코드가 같다거나 인연이 있다고 해서 전문성도덕성 등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공무원으로 일하게 된 사람일수록 더욱더 심했지요. 문제는 그들 스스로는 무엇이 잘못인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공무원은 법에 따라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고 늘 법규를 연찬하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일을 해야지요. 어공이 어떻게든 임기 내에 내세울만한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욕심은 이해를 합니다만 공직자가 지켜야할 법규나 규정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건 안 될 일입니다. 공무원이 정치적이고 정무적인 판단으로만 일을 처리하다보면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상도(常道)가 실종되기 때문이지요. 다음 선거를 의식해서 선심 행정이나 보여주기 식 행정에 치우쳐 정당성을 상실하면 허점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편법을 넘어 범법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늘 법규를 연찬하고 규정에 따라 신중히 일해도 실수가 생기기 마련인데, 매사를 정무적인 판단에 의존해 행정을 하면 실수를 넘어 큰 과오로 번질 수 있지요.

 

늘 공은 어공을 행정을 모르는 문외한이 권력의 뒷배를 믿고 설친다고 깎아내리고 어공은 늘 공을 기득권이고 무사안일에 젖어 있는 개혁대상으로 여깁니다. 늘 공중에도 어공들에 줄을 대고 더 설치는 앞잡이도 생겨나지요. 영전을 염두에 둔 얄팍한 처신이지만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줄타기입니다. 늘 공은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으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만 어공은 그런 기회마저 없지요. 늘 공이든 어공이든 중심을 잃지 않고 일해야 되는데 서로 처지나 관점이 다르니 알력(軋轢)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늘 공과 어공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기면 국민들만 불행해지지요.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공무원은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명제(命題)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