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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따기'라는 공무원

홍승표 2021. 4. 22. 16:03

하다못해 면서기라는 말이 있었지요. 1970년대만 해도 공무원은 그다지 좋은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은행이나 일반기업 등에 취업을 시도하다가 안 되면 공무원 시험을 보았지요. 9급 공무원 시험은 만 18세 이상, 고졸 학력이면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고3 여름방학 때 시험을 보았지요. 마지막 2학기도 남아있고 군()가산점도 없어 불리한 여건이었습니다. 한 달 남짓 죽을힘을 다해 공부하고 시험 전날, 시험장소인 수원 북중학교 부근에 숙소를 잡았지요. 꼬박 밤을 지새워 마지막 정리를 하고 퉁퉁 부운 눈으로 시험을 봤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덜컥 합격을 했고 그 뒤 40년을 공무원으로 살았지요.

공무원 증가 추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고 합니다. 미국의 한 언론사는 한국에서 공무원 되는 게 하버드 대학 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했지요. 그러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더라도 고위직까지 오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5급 사무관으로 시작한 행정고시 출신이 있기 때문이지요. 군대로 말하면 장교와 부사관, 경찰로 말하면 경찰대학 졸업자와 일반 경찰이 출발 지점부터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막상 공직에서 일하다보면 지식으로만 풀 수 없는 일이 적지 않지요. 어떤 문제나 주제에 자신의 가치관, 삶의 철학이 담겨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익혔으되 세상살이를 고민해보거나 생각을 다듬어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새내기 공직자는 제대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지요.

 

경기도 용인시에서 부시장으로 일할 때였습니다. 골프장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찾아왔지요. ‘골프장과 연결되는 진입우회도로가 필요한데 도시계획도로로 지정되어 있으니 건설비용을 부담하면 시에서 사업을 해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실무자가 막무가내로 그런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곧바로 과장·팀장을 함께 불러 민원을 얘기했더니 가능하다고 했지요.

 

부시장님! 죄송합니다. 그런 게 있는 줄 몰랐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물어봐야지, 팀장, 과장은 멋으로 있니?”

 

한 번에 민원을 해결한 사업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맙다는 말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공직 새내기들은 머리 좋고 아는 게 많은지 몰라도 생각의 깊이나 넓이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따르기도 합니다. 행정이 복잡다양해서 단순한 법규 적용이나 논리로는 쉽게 풀어지지 않은 일이 많기 때문이지요. 인재들이 공직에만 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뚜렷한 주관이나 가치관 없이 공직에 발을 들여 놓는 것도 위험한 일입니다. 공무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민의 안녕과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요. 공무원의 가장 큰 장점은 특별하게 잘못하지 않으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가장 큰 단점이 무능한 사람도 안 잘리고 정년까지 간다는 사실이지요.

 

공무원이 늘어난다고 반드시 행정 서비스가 좋아진다고 장담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행정에 AI가 도입되면 25%의 인력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지요. 그런데 공무원 수는 끝도 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부의 고용창출 정책의 일환이기는 하겠지만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지요. 문재인 정부 들어 벌써 9만 명 넘는 공무원이 늘어났습니다. 그전에 20년 동안 늘어난 86천명과 비슷한 숫자이지요. 정부 방침대로 17만 명이 늘어날 경우 2022년도에는 6조원, 2037년에는 12조원의 추가 예산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퇴직하면 우리 후대들이 연금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사실이지요. 우리 경제가 나빠지면 지난 2016년 개정된 공무원 연금개혁보다 훨씬 강도 높은 개혁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IMF 이후 4년간 20% 가까운 지방공무원이 감축되었던 일이 있었지요. 언제까지 공무원의 정년이 보장되고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