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다시 태어나면 뭘 하고 싶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요. 촌놈이었던 저는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돕고 다른 집의 소를 키우면서 학비를 보탰습니다. 운 좋게도 뒤 늦게 고등학교엘 갈 수 있었고, 고3 여름방학 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40년 가까이 광주(廣州)와 경기도청에서 일했지요. 수원에 13평 아파트를 전세로 얻었는데, 연탄보일러 구조라 하루 3번 연탄을 갈아야 했습니다. 10년 넘게 그렇게 살다가 방 2개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아 부모님이 1000만원을 보탰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농협에서 대출받은 것이라는 걸 알고 울컥했지요. 공무원이 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고위직에 오르면서 '흙 수저'에 묻은 흙을 그나마 조금 털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권력 있고 돈 많은 부모인 자녀는 ‘금 수저’, 그러지 않은 자녀는 ‘흙 수저’라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니 운명일 뿐이지요. 그런데 그 운명을 개척할 기회마저 없다면, 무슨 민주주의이겠는지요? 따지고 보면 ‘금 수저’와 ‘흙 수저’외에도 수많은 수저가 있는데도 두 가지로만 대별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진 않습니다. 다양성을 차단하는 것이고,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흙 수저’로 태어나면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만 합니다. 서로의 출발점이 다르다고 미래도 평행선으로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지요. 지금은 될 수 있으면 고생한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가난이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그리 자랑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김동연 전 부총리가 6월 중에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합니다. 그는 ‘흙 수저’ 스토리가 있는 인물입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청계천 판자촌과 지금의 성남이 된 광주(廣州)대단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은행에 들어가 일하면서 야간대학에서 공부해 행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전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2차관과 국무조정실장으로 일했고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로 일하는 등 이미 능력을 인정받았지요. 세간에는 그가 경기지사를 넘어 잠재적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흙 수저’입니다. 그는 가난한 가정 형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지요. 경기 성남공단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하고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흙 수저‘라고 자칭하는 그가 대권 경쟁자인 이낙연 전 총리는 엘리트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고 했지요. 그러자 그는 자신도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장남으로 사는 게 힘들어 죽지 않으려고 군대에 간 ’흙 수저‘라고 했습니다. ’흙 수저‘를 자처한 것이지요. 최근 대권행보에 합류한 정세균 전 총리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수료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역시 ‘흙 수저’ 출신임을 내세워 서민 마음을 얻기 위한 감성 정치에 나선 것이지요. 모두가 표심을 얻기 위한 ‘서민 코스프레(cospre)’라는 생각입니다. 이렇다보니 가정 형편이 넉넉했던 윤석열 전 총장이 학생시절, 친구들을 중국집으로 데려가 짜장면을 여러 번 사주었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신선하게 들릴 지경이지요.
이분들이 ‘흙 수저’ 출신인지는 모르나, 이미 ‘금’을 캔 분들이고 재산도 많으니 이미 금수저인 셈입니다.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자리에 왔다는 걸 자랑하고 싶겠지만, 이미 흘러간 유행가처럼 식상한 일이라는 생각이지요.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하고, 미래는 더욱 더 중요합니다. ‘흙 수저’로 태어났다고 반드시 미래도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을 화두(話頭)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미래 비전이 필요한 것이지요. 공공부문보다 기업이나 소상공인을 지원하고, 청년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것보다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절실한 게 현실이이지요. 지금은 ‘흙 수저’ 마케팅도 좋지만 어떻게 다양한 수저에 무엇인가 담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줄 것인지, 우리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비전을 제시하는 게 중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