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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수저' '금 수저' 말이 많지만^^

홍승표 2021. 6. 2. 15:50

가끔, ‘다시 태어나면 뭘 하고 싶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요. 촌놈이었던 저는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돕고 다른 집의 소를 키우면서 학비를 보탰습니다. 운 좋게도 뒤 늦게 고등학교엘 갈 수 있었고, 3 여름방학 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40년 가까이 광주(廣州)와 경기도청에서 일했지요. 수원에 13평 아파트를 전세로 얻었는데, 연탄보일러 구조라 하루 3번 연탄을 갈아야 했습니다. 10년 넘게 그렇게 살다가 방 2개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아 부모님이 1000만원을 보탰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농협에서 대출받은 것이라는 걸 알고 울컥했지요. 공무원이 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고위직에 오르면서 '흙 수저'에 묻은 흙을 그나마 조금 털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권력 있고 돈 많은 부모인 자녀는 금 수저’, 그러지 않은 자녀는 흙 수저라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니 운명일 뿐이지요. 그런데 그 운명을 개척할 기회마저 없다면, 무슨 민주주의이겠는지요? 따지고 보면 금 수저흙 수저외에도 수많은 수저가 있는데도 두 가지로만 대별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진 않습니다. 다양성을 차단하는 것이고,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흙 수저로 태어나면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만 합니다. 서로의 출발점이 다르다고 미래도 평행선으로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지요. 지금은 될 수 있으면 고생한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가난이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그리 자랑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김동연 전 부총리가 6월 중에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합니다. 그는 흙 수저스토리가 있는 인물입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청계천 판자촌과 지금의 성남이 된 광주(廣州)대단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은행에 들어가 일하면서 야간대학에서 공부해 행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전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2차관과 국무조정실장으로 일했고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로 일하는 등 이미 능력을 인정받았지요. 세간에는 그가 경기지사를 넘어 잠재적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흙 수저입니다. 그는 가난한 가정 형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지요. 경기 성남공단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하고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흙 수저라고 자칭하는 그가 대권 경쟁자인 이낙연 전 총리는 엘리트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고 했지요. 그러자 그는 자신도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장남으로 사는 게 힘들어 죽지 않으려고 군대에 간 흙 수저라고 했습니다. ’흙 수저를 자처한 것이지요. 최근 대권행보에 합류한 정세균 전 총리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수료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역시 흙 수저출신임을 내세워 서민 마음을 얻기 위한 감성 정치에 나선 것이지요. 모두가 표심을 얻기 위한 서민 코스프레(cospre)’라는 생각입니다. 이렇다보니 가정 형편이 넉넉했던 윤석열 전 총장이 학생시절, 친구들을 중국집으로 데려가 짜장면을 여러 번 사주었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신선하게 들릴 지경이지요.

 

이분들이 흙 수저출신인지는 모르나, 이미 을 캔 분들이고 재산도 많으니 이미 금수저인 셈입니다.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자리에 왔다는 걸 자랑하고 싶겠지만, 이미 흘러간 유행가처럼 식상한 일이라는 생각이지요.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하고, 미래는 더욱 더 중요합니다. ‘흙 수저로 태어났다고 반드시 미래도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을 화두(話頭)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미래 비전이 필요한 것이지요. 공공부문보다 기업이나 소상공인을 지원하고, 청년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것보다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절실한 게 현실이이지요. 지금은 흙 수저마케팅도 좋지만 어떻게 다양한 수저에 무엇인가 담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줄 것인지, 우리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비전을 제시하는 게 중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