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19가 창궐한 후 여름휴가를 가지 못하고 방콕(?)에서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책 읽고 글 쓰며 지냈습니다.
매년 여름휴가를 함께 가는 모임이 있지요. 네 가족이 함께 여름휴가를 떠나곤 했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지 못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몇 해 전, 강원도로 여름휴가를 함께 가서 머무른 곳은 속초에 있는 모 기업의 휴양시설이었지요. 비교적 깔끔하고 조용한 곳이고 설악산 조망이 좋은 것은 물론 바닷가도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밤에는 야외에서 생맥주도 마시고 노래방과 사우나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좋은 곳이었지요. 지하에는 사우나와 연결된 수영장도 있는 곳입니다. 방 2개를 빌려 남자와 여자들이 나누어 이용했지요.
"우리 수영장엘 갑시다. 지하에 수영장이 있는데 깨끗하고 넓은 게 시설도 좋고 최곱니다." 일행 중 한 분이 아침 일찍 사우나엘 갔다가 수영장이 있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일찌감치 서둘러 사우나를 마친 그가 방으로 돌아와 수영장엘 가자고 한 것이지요. "수영복을 가져왔나요?" 일행 중 나이가 제일 많은 분이 물었지만 모두가 머리를 가로저었습니다. 수영복을 안 가져왔으니 당연한 일이었지요. "그러면 아침을 먹고 수영복을 하나씩 사들고 와서 가는 게 좋을 듯한데…." 그는 못내 아쉬운 듯, 30분만 다녀올 테니 기다려 달라면서 나갔습니다. "큰일 났어요. 얼른 밥 먹으러 나갑시다." 그가 나간 뒤, 10분도 안 됐는데 헐레벌떡 뛰어들어와서 다급하게 소리를 쳤지요.
모임 일행중 수영복 대신 수건 활용
유유자적중 갑자기 여성들 들어와
그가 수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좋았는데 문제는 수영복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가 수건이었지요. 수건 3장을 허리에 두르고 수영장엘 들어간 것입니다. 한 손으로 흘러내리는 수건을 움켜쥐고 한참을 유유자적 여유 있게 수영을 즐기고 있을 때였지요. 갑자기 한편에서 수영복을 입은 여러 명의 여성들이 몰려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그 수영장은 남녀 공용이고 여성 사우나와도 연결이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그 순간,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오직 빨리 수영장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급히 수영장을 벗어나려는 순간, 그만 허리에 둘렀던 수건이 훌렁 벗겨지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지요.
한 손으로 수건을 잡고 헤엄을 쳐야 되는데 급박한 나머지 손을 모두 놓아 버린 것입니다. 일순간 비명소리가 진동하면서 수영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일대 난리가 난 것이지요. 안 봐도 비디오라고 못 봤어도 상상이 가고도 남는 일입니다.
급히 나오려는 순간 수건이 '훌렁'
당사자 사모님 왈 "웬 미친놈이…"
그 사건은 아직도 '국가기밀 수준'
혼비백산이 되어 돌아온 그에게 이 사건 전모를 듣고 우리 일행은 배꼽을 잡고 때굴때굴 굴러야만 했지요.
그런데 순두붓집으로 아침을 먹으러 간 우리는 다시 또 굴러야만 했습니다. 사건 당사자의 사모님이 정곡을 찌르는 한 말씀을 던졌기 때문이었지요. "나 참, 세상에 별일을 다 봤네. 글쎄 웬 미친놈이 수건을 두르고 수영하다 벗겨진 거야. 생난리가 나서 물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세상 살다 살다 별 미친놈을…. 기막혀 말도 안 나오네!"
그 사건의 전말은 아직 남자들만의 비밀입니다. 국가기밀 수준으로 관리하기로 했지요. 아마도 그 사모님이 그날 그 사건의 당사자가 남편이라는 걸 알면 기절초풍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두 차례쯤 사모님께 그 사건을 말하겠다고 겁박(?)해 밥을 얻어먹은 일이 있지요.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실없는 사람처럼 웃음이 저절로 나옵니다.
휴가를 못가고 지내다 보니 여름휴가 때 생겨났던 그때 그 일이 문득 떠오른 것이겠지요. 내년에는 마음 놓고 여름휴가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입추가 지나서인지 매미와 쓰르라미가 펼치는 막바지 여름 콘서트가 요란하지요. 공들여 정성으로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풍요로운 가을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