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골프, 왜 굳이 그 운동이어야 할까?

홍승표 2021. 10. 6. 14:26

오랜 세월 공직자로 일하면서 골프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골프를 못 하는 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창피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지요.

북부지역 파주시의 부시장으로 부임해 관내 인사를 마치고 현안을 살펴보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부시장님! 주말에 운동 한 번 하시죠.”

인사차 들른 상공회의소 회장이 차담(茶談)이 끝날 무렵 요청했습니다. 제가 당연히 골프를 할 줄 알았겠지요.

죄송합니다. 제가 골프를 못 배웠습니다.”

 

그분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방을 나갔습니다. 그러고는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다시 집무실로 찾아왔습니다.

부시장님! 죄송합니다.”

거두절미하고 갑자기 사과부터 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요. 그분은 골프를 못 한다는 제 말이 자신을 속칭 업자로 치부해 거짓말을 한다고 짐작해 기분이 상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청 공무원을 만날 때마다 물어보니 부시장이 정말 골프를 못 한다는 게 사실이라 속으로 오해한 게 미안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그룹의 회장이 수천명의 전·현직 정관계 고위 인사에게 골프 접대라는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은 일이 있었지요. 접대 받은 고위 인사 중에는 공직자도 포함돼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공무원은 골프 접대를 받은 게 적발되면 징계처분을 받습니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의 임직원, 국공립학교 교사도 골프를 비롯해 현찰이나 상품권, 또는 음식 대접을 받았다가 걸리면 벌금까지 부과됩니다. 속칭 김영란 법이라고 하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때문이지요.

 

함께 일했던 후배 공무원의 불명예 퇴직도 골프 때문이었습니다. 아는 분이 운동을 함께하자고 해서 나갔는데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좀 당황했었다 합니다. 직감적으로 떨떠름한 생각이 들어 골프를 마치고 얼른 데스크에 가서 계산하려는데 이미 비용이 처리돼 있었지요. 안 되겠다 싶어 자신의 몫을 부담하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순간, ‘암행감사반에 적발됐습니다. 인허가를 못 받은 업자가 의도적으로 계획한 함정(?)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지만,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전후 사정이야 어떻든 징계를 받고 스스로 옷을 벗고 말았지요.

 

골프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고 합니다. 좋게 말하면 신사적이고 우아한 운동, 예의와 격조가 있는 운동이라고 합니다. 자연환경이 좋아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공을 날리는 순간에는 걱정 근심을 잊을 수 있다고도 합니다. 골프를 하며 자기 생각을 다듬기도 하고, 교류를 통해 인맥도 쌓는 등 좋은 점이 많다지요. 이와 비교해 사실 음주는 숙취하게 되면 다음 날 피곤하기도 하고 단점이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골프를 배우고 즐기는 건지 모르지만, 공직자가 골프를 하는 건 호불호를 떠나 매우 조심할 일이지요.

 

공직에 몸담았던 동안 골프 접대로 징계를 받거나 불명예 퇴직한 선후배를 참 많이 보았습니다. 특히, 각종 재난 시에 골프 하러 나간 것이 알려져 국민에게도 지탄을 받는 사례가 많은데, 접대를 받는 것으로 으레 인식돼 있기 때문이지요. 가끔 공무원에게 골프 금지령이 내려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비용이 만만치 않아 웬만한 공무원 연봉으로는 마음 놓고 즐기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물론, 내 돈 내고 골프를 치면 아무 문제될 게 없지요. 공직자에게만 골프가 나쁠 이유는 없습니다. 현직일 땐 최대한 자제하고 퇴직 후, 마음놓고 즐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골프가 아니어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은 얼마든지 있지요. 공직자가 왜 굳이 골프여야 하는지도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