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놈들아! 너희들만 처먹니? 그만 먹고 가!”
경기도청 공보실에서 언론에 도정 홍보자료를 제공하는 일을 할 때입니다. 당시 차트 보고가 많았는데, 홍보팀에 있던 제가 글씨를 좀 잘 쓰는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옆 부서인 문화재계 일을 가끔 도왔습니다. 매직펜으로 한자(漢字)를 섞어 쓰는 차트 보고서 일을 끝내면 으레 ‘꽁술’이 따라왔지요. 처음으로 일을 도와준 후 도청 앞 네거리 건너편에 있는 ‘소골집’에 갔었을 때입니다. 한참 맛있게 먹고, 추가로 고기와 술을 주문했는데 느닷없이 주인 할머니가 큰소리로 욕을 섞어가며 그만 먹고 가라는 거였지요. 할머니의 호통에 다들 주눅이 든 듯 “알았어요. 갑니다, 가요”라고 해 어안이 벙벙했지요.
다음날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엄 차관님! 어제 그 ‘소골집’ 머리 하얀 할머니가 그만 먹고 나가라며 욕을 하던데….”
“그 할머니가 원래 그래. 입에 욕을 달고 사는데, 모두 그냥 웃으면서 받아들여. 그 욕쟁이 할머니는 한 사람당 고기 1인분과 소주 한 병 이상 안 팔아. 다른 사람 먹을 거도 있어야 한다는 거지.”
이후에는 저도 그러려니 드나들었지요. 자꾸 들으니 친근함마저 느껴지더라고요. 아무튼, 그 집에는 도청 공무원들이 꽤 드나들었는데, 인사는 나누어도 권주(勸酒)는 자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금세 소주 한 병이 사라지니까요. 그런데 그 소골 집이 ‘도로가각(街角)정리사업’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할머니를 본 사람도 없지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공무원은 꽃길과 공원 조성, 옥외간판 정리 등으로 휴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임사빈 지사도 경기가 열리는 지역을 중심으로 현장 점검을 강행했는데, 어느 일요일 성남시에서 저녁을 하게 됐지요. 이해재 성남시장이 일행을 한 식당으로 안내했습니다. 미리 연락했는지 나이 지긋한 여성 주인장이 마중 나와 있었지요.
“사장님! 지사님 오셨으니 잘 부탁합니다.”
이 사장이 이렇게 말하자 주인장이 대뜸 욕을 퍼부었습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지사가 미쳤다고 일요일에 여길 오냐?”
그러곤, 이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어라! 진짜 지사네, 지사는 쉬는 날도 없나?”
그러고는 좀 무안했는지 얼른 주방으로 향했습니다. 지사도 빙그레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섰지요.
“지사님! 이 집 사장이 원래 저렇습니다. 욕쟁이지만 음식이 맛있어서 찾는 손님이 많습니다.”
“괜찮아! 음식만 맛있으면 되지 뭐”
막걸리를 곁들인 저녁을 마치고 잔디가 깔린 뜨락으로 나서니 주인장이 서 있었습니다.
“지사님, 제 입이 걸어 죄송했어요.”
“하하! 욕으로 양념해서인지 꼬리곰탕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미친놈이 와서 맛있게 잘 먹고 갑니다.”
한동안 웃음소리가 이어졌지요.
“야! 우리 지사 멋쟁이네, 고마워요.”
“이 미친놈, 또 오리다, 욕쟁이 사장님!”
이후, 지사는 성남에 출장하면 으레 그 집을 찾아 사장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냈지요.
요즘은 두 욕쟁이 할머니 같은 분이 안 보입니다. 그런 배짱을 가진 식당 주인도, 풍류와 여유가 있는 도백(道伯)도 찾아보기 어렵네요.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진 탓인지 갈수록 세상이 삭막해지고 사람들도 날카롭기만 합니다. 요새 누가 ‘그만 처먹으라든지 지랄한다.’고 욕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저는 저 대신 큰소리쳐 주는 것 같아서인지 그런 욕이 정겹고 그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