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으면 내일을 말할 수 없다
새해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호랑이의 우렁찬 포효(咆哮)가 올해 시작을 알렸지요. 백수(百獸)의 제왕이라고 부르는 호랑이, 그중에서도 올해는 ‘검은 호랑이’의 해이니 좋은 일이 많이 생길 듯합니다. 검은 호랑이는 세계에 열 마리도 채 안 되는 희귀종이라지요. 벵갈 호랑이(Bengal tiger)의 일종인 검은 호랑이는 유전적 변이로 인해 검정 색소가 많다고 합니다. 황갈색, 또는 흰색 털에 검정 줄무늬를 두른 일반적인 호랑이와 달리 줄무늬가 촘촘하고 넓어 황갈색이나 흰색 털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게 특징이지요. 동종교배의 영향으로 다른 호랑이보다 몸집이 작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호랑이는 단연 용맹의 상징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호랑이가 인간과 매우 친근한 동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민화에서 보이는 호랑이는 해학과 풍자의 대상으로, 익살스럽고 다정하기까지 하지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는 말도 있고, 동화 속에서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면서 사람이 먹는 음식을 즐기는 동물로도 나옵니다. 옛 예술품이나 유적에도 호랑이가 잘 나타나는데, 조선을 호담국(虎談國)이라 부르기도 했지요. 이렇듯 호랑이는 친근함, 꿈과 희망을 주는 동물입니다. 임인년(壬寅年)은 특별히 검은 호랑이의 해라 더 새롭지요. 특히, 오래도록 이어지는 ‘코로나 19’로 세상살이가 힘겨운 때에 많은 사람에게 큰 전환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지요. 이해인 수녀는 〈새해 첫날의 소망〉이라는 시(詩)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첫눈 내리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 같은 하얀 새 달력 위에, 그리고 내 마음 위에 바다 내음 풍겨오는 푸른 잉크를 찍어 희망이라고 씁니다. 창문을 열고 오래 정들었던 겨울나무를 향해 한결같은 참을성과 고요함을 지닐 것이라고 푸른 목소리로 다짐합니다. 세월은 부지런히 앞으로 가는데 나는 게으르게 뒤처지는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후회하며 올려다본 하늘에는 둥근 해님이 환한 얼굴로 웃으라고, 웃으라고, 나를 재촉합니다.’
지금보다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또한,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한 때도 많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것을 누려왔지요. ‘코로나 19’로 형편이 좀 어려워졌다고 호들갑 떨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을 비워야지요. 욕심으로 가득 차, 현실이 더 암울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이지요. 돈이 많고 권력이 있다고 일등 인생이 아닙니다. 이해인 수녀의 시처럼 내 마음에 푸른 잉크로 희망을 써야지요. 그러면 불행도 행복으로 바뀝니다. 누구나 새해 아침에 솟구친 물젖은 햇덩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똑같지요. 그러나 올 한해의 끝자락 노을을 바라보는 마음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잘 살아야하는 이유이지요.
돈이나 권력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만 그렇지 않지요. 어설프게 재력이나 권세를 이용하려다가 외려 역효과를 초래한 경우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자존심이나 품격은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지요. 그래서 세상은 공평하고 누구나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이웃을 배려하고 나누며 산다는 것은 가진 게 어느 정도인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돈을 잘 쓰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쓸 줄 아는 사람이 쓰는 법이지요. 그런 사람이야말로 품격이 있는 분입니다.
잘못을 알았다면 미련을 버려야지요. 지난 것에 매달릴수록 앞날은 멀어집니다. 삿(邪)된 생각을 깨버리고 공들여 정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에 걸림이 없어지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지요.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는 ‘세상이 변한다’는 겁니다. 사람도 변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으면 내일을 말할 수 없습니다. 더도 덜도 말고 새해 새 아침처럼 변하기를 바랍니다, 검은 호랑이의 해 아닙니까. 모두 함께 우렁차게 새해를 시작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