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면사무소에서 면서기로 회계와 새마을 업무 담당으로 일할 때, 토요일은 오전 근무였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계장이 서울에 가자고 해 따라나섰지요. 서울의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 계장 친구 한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자가용에 타고 종로로 향하던 중 계장이 뭘 먹고 싶으냐고 묻더군요. 주저 없이 통닭이라고 답하니 좋은 게 많은데 왜 하필 통닭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여름방학 때, 우리 집에 놀러 온 이종사촌 형이 왜 이곳엔 통닭집이 없느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본 적이 없으니 통닭이 뭔지도 몰랐지요. 아무튼 내 의견대로 통닭집으로 갔습니다.
닭을 통째로 기름에 튀긴 것이 통닭, 정말 꿀맛이었지요. 시원한 ‘소맥’(소주+맥주)에 곁들여 먹으니 환상적이었습니다. 저녁을 먹어야 하니 그만 먹자 했지만, 나는 저녁을 안 먹을 테니 한 마리 더 시켜달라고 졸랐지요. 추가로 시킨 통닭을 거의 혼자 다 먹어 치웠습니다. 잘 먹는 게 좋아 보였는지 계장 친구는 통닭 정도는 얼마든지 사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청계천 상가에서 공구 가게를 해 돈 좀 벌었다고 했습니다. 통닭 맛을 잊을 수 없던 나는 이후 두어 달에 한 번씩 서울에 가곤 했지요. 계장이 친구 분을 만나면 굳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언제나 발걸음은 통닭집을 향하곤 했습니다.
군 생활 때, 아버지가 혼자 첫 면회를 오셨지요. 외출 허락을 받아 나갔는데 뭘 먹고 싶으냐고 해 망설임 없이 통닭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한 마리를 거의 혼자 먹어 치우고, 다른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고기를 굽고 김치찌개까지 먹었지요. 아버지 지갑이 헐렁해졌을 겁니다. 그래서는 아니었겠지만, 그 후 아버지 면회는 없었지요. 농사가 바빠 못 오셨을 겁니다. 가끔 외출했던 선후배가 통닭을 사 들고 왔지만, 계장 친구나 아버지가 사 주었던 맛이 아니었지요. 통닭은 튀기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야 제 맛입니다. 군 제대 후에야 동네에도 통닭집이 생겼는데, 얼마나 기뻤는지….
아들도 통닭을 좋아했습니다. 다만, 명칭이 좀 달라졌지요. 1980년대 초 수원으로 이사했을 때만 해도 튀긴 닭은 통칭 ‘통닭’이라 했는데, 1990년대 들어 ‘치킨’이란 명칭이 대세였습니다. 통닭의 본래 뜻은 ‘자르지 않은 통째로 튀긴 닭’이지요. 치킨도 본래 해석이라면 그냥 닭이지만 통닭과 다른 건 닭을 조각 내 튀긴 것입니다. 요즘에는 통닭이든 치킨이든 다 치킨으로 통하지요. 아들 덕에 나도 통닭에서 치킨으로 입맛이 길들었고 맥주까지 곁들여 풍미가 더했습니다. 아들입대 후, ‘치 맥’(치킨+맥주) 얘기를 꺼냈다가 “아들은 군(軍)에서 고생하는데 그게 먹고 싶으냐?” 핀잔을 듣기도 했지요.
TV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중국과 동남아에 ‘치 맥’ 열풍이 일었고 ‘치 맥 체험’이 인기관광 상품이 됐습니다. 경기관광공사 사장 시절, 중국 시안(西安)에 갔을 때, 현지인들이 ‘치 맥’을 먹자고 해 놀랐지요. 수원의 통닭 거리는 관광명소가 되었고, 매년 열리는 대구 ‘치 맥’ 페스티벌엔 백만 여명의 관광객이 찾아듭니다. 대구는 치킨의 성지(聖地)이지요. 세계최초로 양념치킨을 개발한 주인공도 윤종계라는 대구사람입니다. 지난 6일부터 닷새간, 대구 두류공원 일원에서 3년 만에 열린 ‘치 맥’ 페스티벌엔 120만 명의 내, 외국인이 찾아드는 대성황을 이루었지요. 우리나라 치킨브랜드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