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장님! 청이 있습니다. 우리 동장 좀 바꿔주십시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고집이 많고 저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장은 시장이 임명한 공직자이고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자치회위원들이 선출한 봉사 직입니다. 그런데 동장을 회장 아래 직원쯤으로 여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민자치회장이 무슨 벼슬입니까? 저는 못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나가주세요.”
용인시의 부시장으로 일할 때였지요. 지역신문기자와 함께 들어온 주민자치회장이 동장을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요. 주민자치회장을 완장으로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주민자치회는 주민자치센터에서 시행하는 일에 대한 검토와 조언역할을 하는 단체이지요. 자치위원들이 호선하는 회장은 말 그대로 위원회를 대표해 회의를 진행하고 동장이나 주민 센터 직원들과 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동장보다 높다는 착각을 한 것이지요. 놀라운 것은 지역신문기자가 주민자치회장 편을 든 것입니다. 한심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엊그제 어느 동의 주민자치회장이 모 지역신문기자와 함께와 동장을 바꿔달라는 말을 했습니다. 순간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는데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생겨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오죽 동장이 제 역할을 못하고 권위가 없으면 이런 일이 생깁니까? 읍면동장님들이 꼼꼼히 살피고 주민자치회위원들과 소통을 잘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매월 한차례 실국과장, 읍면동장 연석회의가 끝나면 시장이 나간 뒤, 부시장인 제가 마무리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때, 목소리를 높여 이 이야기를 했지요. 동장을 바꿔달라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동장도 제 역할을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며칠 후, 당사자인 동장이 찾아왔지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주민자치회장이 동장이 들어줄 수 없는 민원을 제기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함께 왔던 기자에게 엄중항의를 했고 정중한 사과를 받았지요. 동장에게도 잘 소통하고 다독이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 주민자치회장이 동장을 졸(卒)로 생각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1999년부터 주민자치센터의 설립과 함께 읍면동에 주민자치회가 설치되었습니다. 주민의 대표기능과 주민자치의 매개기능을 수행하는 일을 하도록 한 것이지요. 주민자치센터에서 시행하는 문화, 복지프로그램의 운영과 관련한 심의를 하고 있습니다. 지역 특성마다 활성화 정도가 다른 데다 일부 주민자치회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 주민갈등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특별한 절차 없이 추천을 받아 위원을 위촉하기도 해 일부주민들이 위원의 대표성을 문제 삼는 일도 있지요. 주민자치회위원은 봉사 직인데 그걸 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라는 걸 잊어선 안 될 일이지요.
아직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고물가에 아우성인 세상에 부천의 한 주민자치회장이 70여명을 초청해 호텔에서 취임 행사를 하고 만찬을 했다고 합니다. 주민자치센터에서 하면 되는데 완장을 과시하고 싶었을 테지요. ‘내 돈 내고 내가 했는데 뭔 참견이냐?’고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 주민자치회장이라면 봉사가 아니라 완장행세를 할까 걱정이 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완장을 찼으니 그 또한 동장 알기를 졸(卒)로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지요. 주민자치회는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단체입니다. 봉사가 아닌 완장으로 행세하면 주민들만 고단하고 불행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