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도 넘은 임사빈 지사시절, ‘가평의 잣을 따는 일에 원숭이’라는 특이한 신문기사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원숭이를 ‘잣을 채취하는 일을 시킨다.’는 것이었지요. 급기야 며칠 후, TV에 원숭이들을 훈련시키는 영상이 소개되는 등 한동안 세간의 화제로 회자(膾炙)되기 시작했습니다. 해외토픽에도 등장을 했지요. 그런데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게 임 지사였다는 게 더욱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임지사 수행 비서로 일해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요.
임 지사가 가평군 연두순시를 가서 주민들과 신년교례회를 가졌습니다. 이날, 잣 농가 주민들은 “일손이 달려 잣 수확에 어려움이 많다”고 대책마련을 호소했지요. 당시 가평엔 800여 잣 농가가 있었고 당시 기준으로 전국 수확량의 80% 가까운 규모의 잣을 생산하는 주산지였습니다. 그런데 잣을 따는 게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어서 채취하는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운 형편이었지요. 가평 주민들의 인력난 호소에, 임 경기지사는 즉석에서 ‘이색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올해부터 원숭이를 투입해 잣을 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이지요.
임 지사는 주민건의사항을 사전입수하고 한동안 고민 끝에 ‘원숭이를 활용한 잣 채취’를 생각한 것입니다. ‘동남아 등 열대지방에선 야자를 수확하는 데 원숭이를 활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이 아이디어를 발표한 것, 그런 자신감으로 “용인 자연농원과 과천 서울대공원 등에서 원숭이를 공급받아 잣 따는 훈련을 시켜 올 가을부터 잣을 따게 해 잣 생산 농가들의 고충을 해소해주겠다.”면서 해외 사례와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습니다. 농민들은 물론 전문가들은 반신반의했지요. ‘원숭이가 많지 않고 짧은 훈련으로는 현실적으로 효과를 얻기는 어렵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짧은 잣 수확기간 동안 연인원 2,300명 넘는 인력이 소요되는데 원숭이를 투입할 경우 원숭이의 노동능력이 사람의 30%수준으로 사람 몫을 하려면 수백 마리의 원숭이가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많은 원숭이를 동원할 경우 사육관리비용이 커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상황도 초래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원숭이 일꾼’ 투입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원숭이를 동원해 잣을 수확하면 새로운 명물이 될 것”, “가평 특산물을 하나라도 더 건져 소득을 지키는 것이 수확방법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쨌거나 임 지사는 산림담당 국장을 일본과 동남아 등에 보내 “야자를 수확하는 원숭이 조련사들의 기법을 배워오라!”고 했지요.
이후, 서울대공원에서 빌린 원숭이 10마리를 가평에 투입했습니다. 원숭이들을 훈련시킨 끝에 잣나무에 올려 보내 한차례 잣을 따오게 하는 데는 성공했지요. 그런데 원숭이들이 한번 올라갔다 내려온 뒤 다시는 올라가지 않았고 조련사 지시도 듣지 않았습니다. ‘Korea Pine’이라고 불리는 잣나무는 30m이상 높이로 자라는데 나무둥치와 줄기에서 끈적끈적한 액체가 나와 미끄럽고 발에 묻기 때문에 원숭이들이 싫어한 것이지요. 결국 원숭이에게 잣을 채취케 하는 방안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원숭이를 잣을 따는 일에 쓰겠다는 발상은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독특한 아이디어였고 농민을 생각하는 지사의 마음을 엿볼 수가 있었지요.
‘잣’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견과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잣’ 수확이 이렇게 힘든지는 잘 모르지요. 잣을 채취하려면 20~30m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10㎏이 넘는 무거운 장대로 주변 나무들을 흔들어 잣송이를 떨어뜨려야만 합니다. 나무 꼭대기에서 장대를 들고 균형을 잡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아 나무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거나 죽는 사람도 생겨나는 극한 작업이이지요. 본격적으로 잣을 수확하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잣을 채취하는 일을 하겠지요. 원숭이를 이용한 잣 채취는 미수(?)에 그쳤지만 획기적인 방법이 나와 농민들의 부담을 덜어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