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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줄거면 빨리 해주자!

홍승표 2022. 11. 14. 22:30

홍 부시장! 내기 하나 합시다.”

무슨 내기를?”

관내를 돌아보고 불법 현수막을 발견하면 내가 저녁을 사고, 못 찾으면 홍 부시장이 저녁을 사는 거요.”

파주시 부시장이 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류화선 시장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요. 몇몇 시군에서 일해 봤지만, 불법 현수막이 없는 데라고는 한 곳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점심 먹고 관내를 돌아보았지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불법 현수막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진맥진 상태로 돌아와 저녁을 살 수밖에 없었지요. 그해 파주는 전국 옥외광고물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돼 대통령 기관표창을 받았습니다.

신세계첼시 프리미엄아울렛20104월 파주 통일동산 내 86000땅을 샀는데 파주시가 6월에 개발 행위를 허가했지요. 류 시장이 신청 하루 만에 허가한 것이라 부시장이었던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졸속 심사를 한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류 시장은 이렇게 대답했지요.

어차피 해줄 일이면 빨리하는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안 될 일은 한 달을 붙잡아도 안 되는 법입니다.”

 

류 시장의 스피드 행정'은 유명했는데, 공무원 생활 30년 넘게 나름대로 일 좀 한다고 자부했던 저 자신이 초라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 무렵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예산 조기집행이 지방행정의 화두였지요. 파주시는 2009년부터 2년 연속 예산 조기 집행 전국 1위를 차지해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모든 공사를 10월 전에 끝내는 클로징(closing) 10’ 시책을 추진한 게 주효했지요. 시청 기술직 공무원으로 이루어진 합동 설계반을 발족, 세밀한 공정계획을 바탕으로 공사를 체계적으로 진행한 것입니다. 다른 시군이 새해 예산을 편성한 후 설계와 공사를 발주하는데 미리 설계했으니 예산 조기 집행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기획재정부 등의 중앙부처에서도 이 클로징 10’을 벤치마킹하고, 감사원은 전국 우수 사례로 선정했습니다.

류 시장은 대기업, 언론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지요. 능력이 출중해 파주시 행정 수준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전국 시장·군수가 뽑는 가장 일 잘하는 사람으로 2년 연속 선정된 것이 이를 반증했지요. 특히 빠른 민원처리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기초단체장으로서는 유일하게 대통령 직속 지역균형발전위원회위원으로 위촉받아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능력과 행정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그를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내정했는데 일부 정치권의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사심 없는 공평무사한 행정 처리로 시민에게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지요.

 

부시장, 부군수 자리는 직업공무원에겐 꿈의 보직입니다. 민선으로 바뀐 후에는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 꿈을 이루더라도 마음 맞는 단체장을 만나지 못하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결이 다르면 마음고생을 하게 되고 실제로 단체장과 맞지 않아 부단체장이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하지요. 아무리 일을 잘해도 시장이나 군수를 넘어설 수는 없으므로 사람 잘 만나는 것이 그야말로 복입니다. 류 시장과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지요. 2년 동안 일한 파주시를 떠나서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긴 한마디가 있습니다.

 

안 될 일은 오래 붙잡아도 안 된다. 해줄 거면 빨리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