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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장 바뀐다고 공무원 달라지나?

홍승표 2022. 11. 22. 10:25

과장님! 접니다.”

 

휴대전화 진동에 놀라 비몽사몽 전화를 받았는데 한석규 기획관리실장이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 사고라도 났나 싶었는데 기분이 좋아 전화했다는 것이지요. 인사작업이 끝나고 한잔 후에 귀갓길이라며 제가 총무과장이 됐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잠결이라 그런 게 아니라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습니다. 당시 손학규 지사는 고위직 인사 시에 인사 담당 국장은 물론이거니와 부지사, 기획관리실장과도 협의했지요. 이 때문에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만큼 폭넓게 검증하고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총무과장은 경기도청의 최고참 서기관이 맡는 게 관례지요. 저는 손 지사의 취임 초부터 그다지 좋은 인상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과장도 암묵적으로 등급이 있는데 저는 초임 서기관이 가는 부서장으로 오래 일했지요. 보통 그 부서장은 1년이 되지 않아 자리를 옮겨주는데 2년 가까이 있었습니다. 지사 측근들이 제가 전임 임창열 지사 비서관이었고 남보다 일찍 승진했다는 걸 근거로 임 지사 사람이라고 보고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요. 손 지사는 1998년 지방선거에서 임창열 지사에게 패했고, 2002년 재도전해 진념 전 부총리를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었으니 총무과장 발령은 의외였지요.

 

어느 날, 이기수 문화 관광국장이 체육과장으로 와 함께 일하자고 제안해왔습니다. 그리하겠다고 했는데, 뜬금없이 관광과장으로 발령이 났지요. 이것도 손 지사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전국 처음으로 개최하는 ‘2005 경기방문의 해를 앞두고 전임 과장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데 그 후임으로 저를 낙점했다는 것이었지요. 순간, ‘내 근량을 달아보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년 남짓 경기관광공사와 함께 열심히 협업을 하며 일했지요. 모든 준비를 마치고 ‘2005 경기방문의 해선포식을 열었는데,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게 총무과장으로 가는 발판이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세월이 지나 나는 공직에서 명예퇴직 후 3년간 맡았던 경기관광공사 대표사원으로 일하고 임기를 마쳤는데, 어느 날 손 전 지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약속 장소에는 전직 부지사 2명도 합류했지요. 인사동 한 식당에서 녹차막걸리를 반주 삼아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후 나는 답례로 따로 자리를 마련하려 했지만, 손 전 지사가 다시 정치 일선으로 복귀하는 바람에 여의치 않았습니다. 더구나 코로나19롤 만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지요. 얼마 전, 서울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손 전 지사를 만났습니다.

 

저를 왜 총무과장으로 발탁했었는지 궁금합니다.” 막걸리가 몇 순배 돌아간 후, 한마디 던졌지요.

홍 과장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 하지만 나는 내가 직접 관찰하고 겪어 보지 않으면 함부로 판단하지 않아. 주변 얘기는 참고일 뿐, 눈여겨보니까 일 잘하고 상하 관계도 원만하고 그렇더라고. 처음에는 부정적인 사람도 있었지만, 이번엔 총무과장 발령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지.”

 

역시 네거티브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일하는 걸 지켜보고 발탁했다니 고마웠지요. 그렇습니다. 100점짜리 공무원이 지사가 바뀌었다고 갑자기 70점이 될 리 없고, 반대로 70점짜리가 100점이 될 리 없지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지사가 바뀌어도 일 잘하는 사람은 잘하고, 일 안 하는 사람은 안 하는 법이지요. 지사는 임기를 마치면 떠나지만, 직업공무원은 범죄 등의 사유가 없는 한 정년이 보장돼 있습니다. 관청의 주인은 공무원이고, 공무원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이지요. 지사나 시장, 군수가 바뀌든 말든 열심히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 그게 공무원의 숙명이자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