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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슬리퍼와 특권의식^^

홍승표 2022. 11. 27. 11:30

아버지! 저는 기자라면 동생도 별로입니다.”

 

경기도청 공보관실에서 도정 홍보자료를 만드는 일을 맡아 몹시 힘들고 지쳐 있을 때였습니다. 아버지와 형제들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곤 아차!’ 싶어 순간, 움찔했지요. 홍보자료를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기자와 접촉이 많았는데,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소위 갑 질에 질린 적이 있었던 게 잠재돼 있다가 일순 나도 모르게 툭 불거져 나왔던 것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이놈아! 아무리 그래도 동생을 싫다고 하면 되냐고 꾸중을 들었습니다. 셋째 동생이 기자이기 때문이었지요.

홍 형! 제씨(弟氏)가 시장 기자회견장에서 맨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았는데 보기가 안 좋았어요. 홍 형 동생이라 얘기해주는 것이니...”

 

도청에서 일하다 서기관으로 승진해 수원시청 총무국장으로 일하는 선배전화였습니다. 도지사 비서실에서 일할 때인데 수원시청에 출입하는 동생의 행동이 눈에 거슬렸던 것이지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기자로 살지 말고 사람으로 살라!’고 우회적으로 말해주었습니다. 어느 곳이든 특권은 있지요. 그중에서도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의료인, 기업인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공무원도 별 다를 게 없지요. 누구든 다 자기 할 탓이긴 하지만, 완장 찬 사람은 매사(每事)갑 질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세간에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시간에 대통령 실 비서관과 설전을 벌인 MBC 기자가 슬리퍼를 신고 소리친 것을 두고 말이 무성하지요. 국민의 힘이 무례하다는 비판을 내놓자 야권에서는 좁쌀 대응이라고 하는 등 정치적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SNS국가 원수인데 고함지르고 슬리퍼에 팔짱 끼고 난동 부리는 거 보니 다 계획적이고 대통령이 자기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나 보다.’ ‘대통령이 아니라 남대문 지게꾼하고 만나도 슬리퍼를 신고 나갈 수는 없다. 그게 취재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글이 올라왔지요.

저는 광주시와 경기도청 공보관실 주무관, 고양시와 의왕시청 공보담당관, 경기도청 방송팀장과 홍보팀장으로 10년 가까이 일했습니다. ‘공무원 관선기자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이지요. 그 때, 시장, 군수나 도지사 만날 때, 슬리퍼 신고 고함치는 기자는 본 일이 없습니다. 기자는 무소불위의 특권을 가졌다는 생각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언행을 한 것인지? 궁금하고 또 궁금합니다. 인성과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앞설 따름이지요. 사람과 사람사이엔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습니다.

20191월 연두 기자회견 때 경기방송 김예령 기자는 문재인 대통령님, 경제에 대해 자신감을 보여주셨는데 그런 자신감의 근거는 뭔지 여쭙습니다.”라고 질문했다가 크게 낭패를 당했지요. 문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악플 테러에 시달려야 했던 것입니다. ‘건방지고 불손하다. 감히 우리 대통령한테 무례하게 그럴 수 있느냐?’는 비난이었지요. 견디기가 어려웠는지 그는 경기방송을 떠났고, 오비이락(烏飛梨落)격으로 그 후, 경기방송은 스스로 폐업을 신청하고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MBC기자는 슬리퍼면 어떻고 맨발이면 어떠냐? 대통령이 왕은 아니라면서. 그게 기자정신이라고도 했지요. 과연 그럴까요? 물론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존재는 아닙니다. 기자 또한 다를 게 없지요. MBC라는 거대언론의 뒷배를 믿고 그랬겠지만 결코 MBC에도 도움 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퇴직 후에도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현직에 있을 때, 스스로를 낮추면서 살아야지요. 세상 누구도 죽을 때까지 완장으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권력도 영원하지 않은 게 세상이치이지요. 완장도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