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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못해서 곤혹 치룬, 설 명절^^

홍승표 2023. 1. 23. 15:53

양주 출신 임사빈 경기도지사의 수행비서로 일할 때입니다. 설 명절 다음날 일정은 지사의 고향 양주에서 열리는 윷놀이 행사 참석이었지요. 서둘러 아침을 먹고 도지사 공관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보이지 않았지요. 청원경찰에게 물어보니 아직 안 왔다는 겁니다. ‘출발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급히 삐삐로 호출했지요. 곧바로 전화가 왔습니다.

왜 아직 안 오는 거냐고 물었더니 지사께서 오늘까지 쉬라고 했는데, 무슨 일 있느냐?”며 오히려 반문하더군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어질어질했습니다. 운전을 못 하니 난감했지요. 당황해하는 사이, 지사께서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차에 올랐습니다.

 

홍비서! 가자!”

지사님! 죄송한데 제가 운전을 못 합니다.”

? 여태까지 운전을 안 배웠어?”

말을 마치자마자 지사는 뒷좌석에서 내려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홍비서! 안타고 뭐 해? 타라, 얼른 가자.”

얼떨결에 차에 올랐지요.

? 불안해? 걱정하지 마. 나 운전 잘해.”

출발은 했지만, 말 그대로 좌불안석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줄기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다른 방도가 없는 일이었지요. ‘살다 살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생각보다 많이 막히지 않아 차는 수월하게 움직였지만, 그 시간이 그렇게 지루할 수 없었습니다. 그사이에 저는 삐삐로 다시 고 기사를 호출했지요.

고 기사님! 양주 회천읍사무소!”

소곤거리듯 간단히 말하고 전화를 끊었지요. 그 당시 차에 모토로라 제품인 카폰을 설치해 두고 있었는데 지사가 들었던 모양입니다.

홍비서! 무슨 전화야?”

아닙니다. 고 기사 전화입니다.”

그래? 고 기사 양주로 오라고 하지 그랬어. 아무래도 윷놀이 마치면 술 한잔해야 하지 않겠어?”

! 그렇지 않아도 방금 그렇게 전했습니다.”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시간이 멈춘 듯 지루한 게 고통이었지요.

 

차가 행사장인 회천읍 운동장에 도착하자 군수가 쏜살같이 다가와 뒷문을 열고 넙죽 허리를 숙였지요. 당연히 그 문에서 지사가 나올 줄 알았을 겁니다.

?”

텅 빈 뒷자리를 본 군수가 황당해할 때, 운전석에서 내린 지사가 나 여기 있다는 듯 손을 흔들었습니다.

왜 거기서 내리세요? 운전하셨어요?”

그렇게 됐어...”

이게 뭔 일이야?”

 

어안이 벙벙해진 군수가 저의 옆구리를 찔렀지만 저는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한겨울인데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등짝에 땀이 흥건했던 것은 그때가 난생처음이었지요. 윷놀이가 열리는 동안에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지만, 저는 딱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호출을 받고 도착해 있던 고 기사가 운전했고, 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지요.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냐! 확인도 안 하고 홍비서가 당연히 운전할 것으로 생각했던 내가 잘못이지.”

 

별일 아니라는 듯 덮어주는 지사가 고맙기도 했지만 저는 더욱더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도 운전 못해 곤혹을 치룬 그해 설 명절에 얻은 게 하나 있지요. ‘높은 사람이 운전하는 차는 타지마세요. 그거 죽을 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