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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도 잘 붙이면 신바람^^

홍승표 2023. 2. 26. 21:40

소주병 과장! 양잠(養蠶)분야에는 별 지장이 없지요?”

! 별 이상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소주병이 아니고 소병주입니다.”

 

경기도청에서 임사빈 지사수행비서로 일할 때입니다. 오랜 가뭄에 따른 대책을 보고받던 지사가 과장이름을 잘못 불러 폭소가 터졌지요.

소병주나 소주병이나.”

지사가 멋쩍어하며 뱉은 말에 회의장은 또 한 번 웃음바다가 됐고 이후 잠업특작(蠶業特作)과장 별칭은 소주병이 됐습니다.

 

그 당시, 회식을 즐겨하는 과장이 있었는데, 직원들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 했지요. 한잔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 해놓고 혼자만 이야기하니 회식이 반가울 리 없었던 것입니다. 어느 회식 자리에서 한 직원이 술김에 우리 과장은 연산군 같다.’고 했는데, 과장이 어떻게 그걸 알게 되었지요. 미운털이 박혀 같이 일하는 동안 그 직원이 참 힘들어해 안타까웠습니다.

총무과장일 때, 매월 열리는 직원조회에선 공무원의 신조를 낭독했지요. 형식적이고 식상한 관례라서 지사께 건의해 직원 5분 자유발언 시간으로 바꾸었습니다. 발언신청을 받았는데 의외로 신청자가 많았지요. 부서가 다르고 주제도 다른 데다 마땅한 선정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노조와 협의해서 발언자를 정했습니다. 직원 후생·복지 문제부터 상사의 폭언이나 일방적 지시에 대한 시정요구 등 다양한 발언이 쏟아졌지요. 직원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과 호응을 받았고 비판도 칭찬도 뒤따랐습니다. 어느 날, 제가 별명을 지어준 한 직원이 발언자로 나섰지요.

 

제가 모셨던 과장님은 인간적으로 좋은 분이었습니다. 직원들과 소통하고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요. 도의원들과 업무협의도 잘해줘 일하는 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제게 없던 별명을 지어준 것이었지요. 저에게 대제학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지금도 기분이 좋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른 것도 아닌데 신나서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번에 사무관 승진 예정자로 선발됐지요.

윗분은 이렇게 아랫사람의 사기를 올려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뜻한 포용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는 말미에 지금 과장님도 훌륭한 분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고 사족(蛇足)을 달아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습니다.

 

경기도청에서 일하면서 참 많은 공무원을 만났지요. 비서실이나 인사, 홍보부서에 오래 근무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선후배와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직원들과 회식할 때면 친근감의 표현으로 별명을 부르곤 했지요. 이름을 따서 대제학’, ‘의리의 사나이 돌쇠’, ‘강가의 돌멩이’, ‘강도라고 불렀습니다. 얼굴이나 몸짓을 보고 둘리’ ‘거봉’ ‘하이에나’ ‘촌닭등 다양한 별명을 붙여주었지요. 돌쇠팀장은 성실의 아이콘으로, 강가의 돌멩이 팀장은 발군의 글 솜씨와 친화력으로 승진을 거듭해 두 사람 모두 고위직에 올랐습니다. 별명도 잘 붙이면 신바람 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누구나 한두 가지 별명을 갖게 됩니다. 어머니는 말수가 적은 저를 으로 불렀지요. 군 시절, 군사령관의 부대순시 날, 모두 바삐 움직이는데 뭘 할지 몰라 엉거주춤했습니다. 그때 선임 병이 ! 넌 왜 두꺼비처럼 눈만 껌뻑이고 있냐?”고 고함쳤지요. 그 후, 저는 두꺼비가 됐습니다. 나중엔 술을 잘 마신다는 의미로 와전됐지만.

오랜만에 만난친구가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지요. 할 수 없이 별명을 부르는데 기분나빠하는 친구는 없습니다. 별명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거지요. 저 역시 이나 두꺼비로 불릴 때가 좋았는데, 이젠 별명을 부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인생이 노을 속에 있는 탓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