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날, 새 옷을 입으며
“사장님! 홍비서도 사이즈를 재주세요.” “지사님!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야! 연말선물로 내가 양복(洋服)한 벌 선물해주는 거야! 수행비서는 말이야 지사얼굴이고 지사를 돋보이게 하는 사람이야!”
임사빈 지사 수행비서로 일하던 어느 해 연말입니다. 지사께서 정장 한 벌을 맞추신다고 수원 중동 네거리 조흥은행 맞은편에 있는 미조사 양복점 엘 들어갔지요. 양복치수를 잰 지사께서 저에게도 사이즈를 재라고 했습니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사장이 재빠르게 제 윗저고리를 벗기곤 치수를 재기 시작했지요. 아마도 제가 박봉에 양복을 맞춰 입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신 건지도 모릅니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얼떨결에 맞춤양복을 입게 됐는데 옷이 편하고 맵시가 빼어나 오랫동안 즐겨 입었지요. 그 양복을 입을 때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며 지냈습니다.
2년 후, 고향에서 아버지 회갑연이 있었지요. 그때, 지사님은 이미 현직이 아닌데도 직접 너른 고을(廣州)까지 찾아와 축하해주셨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지요. 그런데 아버지 드리라고 저에게 건네준 선물이 더욱 놀라웠습니다. 서울에 있는 양복점 상품권이었지요. 회갑연을 마친 며칠 후,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양복을 맞췄는데 아버지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저도 지금 입은 양복이 지사님이 맞춰주신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정말 고마운 분”이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지요. 아버지는 그 양복을 너무 귀한 옷이라고 아끼며 명절이나 귀한자리 외엔 입지 않고 고이고이 모셔 두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양복을 몇 번 입어보지 못하고 다음해, 예순둘 나이에 하늘로 떠나셨지요. 아버지 돌아가신 후, 유품정리를 하다가 그 양복을 얼싸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시골 어르신이 도지사를 지낸 분한테 최고급 양복을 선물 받았다고 그렇게 자랑하시더니 몇 번 못 입고 떠나셨으니 안타까운 일이었지요. 아버지와 아들이 도지사로부터 양복을 선물 받은 건 정말 특별한 일입니다. 저는 그 양복을 입을 때마다 아버지와 지사님을 떠올리며 ‘두 분이 실망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스스로를 곧추세우곤 했지요. 그 다짐은 공직자로 살아오는 동안 좋은 보약이 되었습니다.
“어! 여보! 저기 미조사 양복점이 있네!” “미조사가 왜?” “그 양복점이 옛날 수행비서로 일할 때, 지사님이 양복을 맞춰준 곳이야” “언제 쩍 얘기를...”
그 후에도 오랫동안 공직자로 살았습니다만 아들이 결혼할 때 빼곤 정장을 맞춰 입은 일이 거의 없었지요. 일에 묻혀 살다보니 옷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고 퇴직 후엔 더욱 그러했습니다. 조흥은행이 사라질 무렵, 미조사도 사라졌고 16년 전, 동탄 신도시로 이사 왔으니 미조사를 잊은 건 당연했지요. 그런데 얼마 전, 수원 중동 네거리를 지나는데 미조사 간판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고 아버지와 저에게 양복을 선물해준 지사님 생각이 나서 마음먹고 봄 양복을 맞추러 찾아갔지요.
“사장님! 언제 이곳에 다시 오셨나요?” “세든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 다른 곳에서 하다가 얼마 전, 이곳으로 왔지요.” “제가 35년 전에 뵈었으니 이제 연세가 높으시죠?” “여든입니다.”
사장 어르신도 지사님을 기억하고 있었지요. 지사께서 살아계시면 이제는 제가 옷을 맞춰드렸을 것이고 지사님도 ‘홍비서! 많이 컸네!’라고 대견해하셨을 겁니다. 지사님이 맞춰주신 옷은 잊지 못할 특별한 선물이었지요. 그 고마운 추억을 떠올리며 새 봄을 맞아 새로 옷을 맞춰 입었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공들여 정성으로 살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