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님! 수원화성을 돌아보는 열차를 만들려고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2001년, 경기도청에서 문화정책과장으로 일할 때, 수원시청의 김충영 과장이 찾아왔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맞춰 국내외 방문객이 열차를 타고 수원화성을 돌아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지요. 그의 말에 따르면, “관광과에 갔더니 수원화성은 문화유산이니 문화정책과 소관이라고 발뺌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열차 2대를 만들고 노선을 정비하는데 15억 원 정도가 소요됩니다. 절반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수원에는 수원화성과 행궁 외엔 특별한 관광 콘텐츠가 없으니 화성열차를 통해 관광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공감, 의기투합했지요. 그를 만난 지 사흘 후, 두 명의 직원과 여수엘 갔습니다. 오동도를 운행하는 ‘동백열차’를 타보고 전반적인 운영 실태를 알아보았지요.
“이 계장! 어떻게 생각해?”
돌아오는 길에 의견을 정리하려고 한마디 던졌습니다.
“좋은 명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건 관광과 소관 같은데요?”
“그건 걱정하지 마! 부담 안 줄 테니”
여수에서 돌아온 후 임창열 지사께 화성열차 필요성을 보고했더니, 임 지사도 좋은 생각이라고 했지요. 다만, “화성일대를 돌아보는 열차를 만드는 일을 도에서 추진하려는 것이냐?”며 반문했습니다. 그래서 “그건 아니고, 수원시가 맡지만, 수원시 내년 예산으로는 시기가 촉박하므로 경기도가 특별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지요.
“얼마를 주면 되나요?” “7억 원만 주십시오.”
지사는 두말없이 결재했습니다.
김충영 과장에게 지원결정 사실을 전화했더니 몇 차례나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지요. 그를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성사된 일이었습니다.
수원시는 곧바로 차량 제작과 화성열차 노선 설계 용역에 착수했는데, 열차의 머리는 임금을 상징하는 용머리로 형상화했지요. 객차는 정조대왕의 어가(御駕, 임금이 타는 가마)를 상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화성열차를 타는 손님을 임금님 모시듯 대접하겠다는 뜻이었지요. 이런 과정을 거쳐 화성열차는 2002년 6월, 월드컵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첫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요. 황금빛 용머리와 빨간색 객차를 두고 중국 냄새가 난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축구선수들의 선전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붉은 악마’가 되어 응원하자 빨간색 거부감도 사라졌지요.
2016년, 수원시는 수원화성축성 220주년을 맞아 ‘수원화성방문의 해’로 선포하고 다양한 관광콘텐츠를 마련했습니다. '화성열차'를 '화성어차'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 시켰지요 특히, 앞부분에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전용차량 앞모습을 재현시켰지요. 3.2km의 노선을 5.8km로 늘리고, 운행 방식도 순환 형으로 바꿨습니다. 화성어차를 타고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과 대표적 먹거리인 수원왕갈비, 지동순대시장, 통닭거리를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화성열차는 한 공직자의 소신으로 탄생한 결과물입니다. 기꺼이 사업을 지원한 임지사의 흔쾌한 결단도 큰 몫을 했지요. 공직자가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의회와 시민단체의 벽을 넘기 어렵고 감사를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화성열차는 경기도의 시책추진비와 공모사업 선정에 따른 정부지원으로 이런 감사나 저항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한 공직자의 아이디어가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 그게 지금 수원의 관광명물이 된 화성어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