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서 일할 때 초빙한 강사가 사정이 생겨 우연히 특강을 하게 됐는데, 강의를 마치면서 다소 뜬금없이 물어봤습니다.
“다만 얼마라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시겠습니까?”
열 사람이 채 안 되었지요. 다시 한마디 던졌습니다. “사회복지는 국민 복리 향상을 위한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이 중요한데 실망스럽네요. 일선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야말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슴에 담고 솔선수범해야 하는 분들 아닙니까.”
꼭 제 말 때문이랄 수는 없겠지만, 이후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매월 월급의 1%를 모금해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지요.
저는 사회복지 직렬 공무원뿐만이 아니라 시청의 공직자가 모두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자고 시장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과연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리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시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참여 의사를 밝힌 공직자가 98%를 넘어 저도 깜짝 놀랐지요. ‘공직자라는 사명감이 이 정도일 줄이야’, 새삼 시청의 직원들에게 감동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시의회와 협의, 공직자 모금액만큼의 금액을 일반예산에 반영하는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내친김에 더 나아가 ‘LG 필립스’ 노조 위원장을 만나 좋은 일을 하는 거니 기업체도 동참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며칠 후 흔쾌히 수락 의사를 밝히더군요. ‘경기도 사회복지 공동모금회’도 함께했지요. 지방정부, 의회, 기업, 공익단체가 한마음으로 이듬해 1월부터 소년소녀가장과 시설 어린이들에게 매월 5만 원씩 후원했습니다. 또, 후원으로 그친 게 아니라 주말마다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위문품을 전하고, 잡초 뽑기나 도배 등의 봉사활동도 병행했지요.
아이를 돕는 일을 펼치자 공직자에 대한 시민의 인식과 평판이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되니 모두 뿌듯했겠지요. 세간의 칭찬이 긍정적인 효과를 낳은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돕는 보람을 느끼게 된 것이 훨씬 더 컸다고 봅니다. 서로 힘을 모으면 가치 있는 결실을 보게 된다는 것, 이를 깨달은 건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례는 ‘2010년 대한민국 휴먼대상’ 우수상을 받으며 전국적인 관심으로 이어졌지요.
‘어린이를 도울 때 진짜 어른이 됩니다.’라고 크레파스로 쓴 글귀가 생각납니다. 옛 성현도 ‘어르신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하고(老者安知) 친구와 신의를 지키며(朋友信知) 아이를 품에 보듬고 잘 이끌며 살아야 한다(少者懷知)’라고 강조했지요.
사실, 미래를 말하면서 그 미래의 꿈과 희망은 어린이라고 말하지만, 선뜻 나서서 실제로 도와주는 사람은 드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율배반이지요. 우리의 미래는 청소년이라는 말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나타나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오늘을 사는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이라는 사실이 당연하다면 당연히 행동이 뒤따라야지요.
시골에서 자란 저도 어렸을 때 학용품을 제대로 못살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해 시작한 소년소녀가장 후원이 어느새 30년이 넘었지요. 매월 적십자 기부도 15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제 이름 석 자가 ‘초록우산 명예의 전당’에 헌액(獻額)되고, ‘적십자회원 유공장 금장’을 받은 것도 이런 후원 덕분입니다.
공직 은퇴 후에도 후원은 단 한 번 거른 적이 없는데, 국민 세금으로 살았으니 아이들을 위해 작은 정성이나마 보태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술 한 잔 덜하면 되는 적은 돈이라도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록 작은 정성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쁜 마음으로 학용품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의미 있는 일을 멈출 수는 없지요. 아이들을 도울 줄 알아야 진짜 어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