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재난으로 인한 비극을 더욱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치에서 제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오만함을 내려놓고 국민을 위해 헌신하던 저의 사명, 제가 있던 곳이자 있어야 할 곳, 국민의 곁을 지키는 소방관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 서른 두 살의 소방공무원 출신 국회의원이 탄생했습니다. 구조대원과 구급대원, 산악구조대원, 항공대원을 거친 10년차 현장소방공무원출신 오영환 의원이지요. 그는 소방현장에서 “법과 제도가 갖춰지면 국민이 더 안전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며 “미리 예측하고 법과 제도에 반영하는 흐름이 반드시 생겨나야 한다.” 정치계에 몸담은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는 실제로 지난 3년간 ‘생명존중 안전한 일터 3법' 입안을 시작으로, 대형 화재 사건 예방을 위한 건축법, 소방시설 법, 산업안전 법 등을 개정했지요. 특히 소방 공무원들의 숙원사업인 '화재예방3법'도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서는 참사 당일 현장에 급파된 소방관을 증인으로 불러 ‘타 기관의 지원이 없었다.’는 답변을 이끌어내기도 했지요. 모두 그가 겪은 소방현장의 경험을 살린 의정 활동이었습니다. 초선치고는 나름 의미 있는 의정활동을 펼치고 원내대변인 직까지 맡아 인지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내년 총선에서의 재선전망이 좋다는 여론이 형성된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그가 총선을 1년 앞둔 지난 4월, 돌연 내년 총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지요. 현직의원들에게는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는 데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유력 정치인에게 줄을 대고 물밑작업을 하는 이유이지요.
이처럼 22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정치인사이에서 그가 ‘소방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며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누리던 특혜들을 모두 내던지겠다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은 장관보다도 좋다는 게 정설입니다. 총리를 지낸 사람도 국회의원 금배지를 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보면 국회의원이 천당보다 좋다는 농담이 진담으로 들릴 정도이지요. 그만큼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은 버릴 수 없는 말 그대로 황금보다 귀한 것입니다. 그러니 오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모래먼지바람 이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격이지요.
국회의원보다 소방관들이 존경받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희생하며 봉사하기 때문이지요. 유감스럽게도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희생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공직자로 일하는 동안 가끔 재난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다 순직한 소방관 이야기를 접하곤 했지요.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그들의 애끓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그가 소방관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있지요. 우선 소방관채용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동안 누렸던 특권도 미련 없이 내려놓아야만 하지요.
그는 자신이 ‘소방 오타쿠’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합니다. 일본어 ‘오타쿠’는 특정 사물이나 취미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몰입하는 사람을 말하지요. 이를 한국식 표현으로 ‘덕후’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소방에 대한 소방에 대한 사명과 소명의식은 국회의원이라는 특별한 지위와 특권보다 더 소중한 가치이겠지요. 존경스러운 마음이 드는 이유입니다. 지금 여의도를 주름잡는 금배지들이 정말 나라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앞서지요. ‘훌륭한 정치 덕후’가 아니라 오직 다음 선거를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은 것입니다. 특권을 내던지고 소방관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