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배우는 삶의 가치
“부시장님! 잠시 쉬었다 가지요.”
“아니, 날 더러 뒤처지지 말고 힘들면 쉬엄쉬엄 가도 된다더니….”
“죄송해요. 산을 이리 잘 타시는 줄 몰랐어요.”
파주시 부시장으로 일하게 된 첫 주말, 감악산이 있는 적성면의 안배옥 면장 안내로 산행에 나섰지요. 다른 과장 두 분도 함께했습니다. 안 면장은 별명이 ‘감악산 다람쥐’라고 할 만큼 산 구석구석을 꿰차고 있는 분이지요. 그런데 산행에 참여한 세 과장 중 둘은 산행이 능숙했는데 한 사람이 신통찮았습니다.
“박 과장님은 등산이 별로인가 봅니다.”
“네, 꺾기 운동(?)이 훨씬 좋죠.”
그가 손가락으로 술잔 기울이는 시늉을 하며 답하는 통에 그만 마시던 물을 내뿜고 말았습니다.
제가 산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자 많은 직원이 동행을 요청했지요. 일정을 조정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작게는 네다섯 명에서 보통 열 명 정도 함께했는데, 감악산 산행만 서른 번 가까이 됩니다. 감악산 말고도 고령, 파평, 비학, 월롱 산 등 파주에 있는 웬만한 산은 거의 다 갔지요.
과천시 부시장으로 일할 때도 처음 시도한 것이 직원들과 산에 드는 일이었지요. 산악회장을 만나 매주 토요일에는 관악산이나 청계산에 가고, 매월 한 차례의 정기산행은 먼 산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치악산, 오대산, 지리산도 찾아들었는데 오르거나 내리막길이 삶의 여정과 같다는 생각을 했지요. 어느 날, 산림과장이 관악산 노점상 단속 문제를 꺼냈습니다.
“부시장님! 관악구청과 합동으로 관악산 정상에서 막걸리 파는 걸 단속해야겠습니다.”
“그냥 두는 게 어떨까요, 그들도 먹고살아야지요. 함부로 나무나 바위에 손대지 말라 하고, 청소 잘하도록 지도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산 정상에서 마시는 막걸리 한잔이 얼마나 꿀맛입니까. 산림훼손 안하면 되고 등산객도 아쉬워할 것 같아 그렇게 얘기했지요.
“어떤 X새끼야? 그렇게 빨리 가면 어떡해. 따라잡느라 죽는 줄 알았네!”
용인시 부시장 시절, 연천의 고대산을 찾았을 때입니다. 보통 시청 산악회장이 길라잡이 역할을 했는데, 그날따라 불참이라 제게 앞장서 달라고 부탁한 거지요. 산을 오르다가 후미(後尾)가 보이지 않아 ‘칼바위’ 앞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교통과장이 헐떡이며 올라오더니 버럭 화를 낸 겁니다. 졸지에 ‘X새끼’가 된 저는 짐짓 못 들은 척 딴전을 피웠지요. 잠시 뒤, 그 당사자가 저라는 걸 뒤늦게 알고 당황한 그가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부시장님! 죄송합니다. 절대로 부시장님을 두고 한 소리가 아닙니다. 그냥 너무 힘들어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습니다.”
함께 산행한 직원들은 정상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이 소릴 듣고 배꼽을 잡고 웃었지요. 다음 월요일, 이 일은 입소문을 타고 시청 전체에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 사건(?)이 떠오르는지 저를 보며 웃는 통에 저 역시 실실 웃으며 지냈지요.
저는 시간 날 때마다 산에 들어 한그루 나무로 서서 삶을 돌아보곤 합니다. 산은 세상이 변해가도 묵묵히 나무와 풀이 잘 자라고 새들과 산 짐승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지요. 산에 들면 산을 보는 게 아니라 낮게 엎드린 세상을 보아야합니다. 산마루에 서서 ‘내려가면 아옹다옹 다투지 말고 점잖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물론 내려오면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그래도 오랜 세월 그런 마음이 쌓이면 인성이 산처럼 넉넉해지고 스스로를 낮추게 되는 것이지요. 그게 산에서 배우는 삶의 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