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인생은 자식이 누릴 가치^^
"아버지! 은기가 저보다 할아버지가 더 좋데요!"
어느 날, 며느리가 뜬금없이 한마디 던졌습니다.
"그럴 리가…?" "실제 상황이에요."
엄마보다 할아버지가 좋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지요. 손자의 속내가 궁금했습니다.
"은기야! 왜 할아버지가 더 좋아?" 손자에게 물었지요. "엄마는 잔소리가 많은데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아 좋아요"
헛웃음이 나왔고 뜻밖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부모보단 잔소리 덜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그런 생각을 한 것이지요. 어느새 손자 녀석이 많이 컸구나! ‘벌써 자아의식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 일은 저도 손자 녀석을 다시보기 시작한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제게 한 번도 공부하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지요. 공부를 못 하면 그걸 빌미로 농사일이나 도우라고 할 수 있지만, 공부를 잘하면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를 졸업했는데도 고등학교 얘기는 전혀 하지를 않았지요. 저는 방과 후 농사일을 돕겠다며 고등학교엘 보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어머니도 "승표가 공부를 잘하니 보내자"고 거들었고 담임도 찾아와서 아버지와 술잔을 나누며 "승표는 아까우니 고등학교에 보냅시다."라고 설득했지요. 이런 과정을 거쳐 어렵사리 고교에 진학한 저는 공부하면서 약속대로 학교수업을 마치면 정말 열심히 농사일을 도우며 지냈습니다.
저 역시 하나뿐인 아들에게 한 번도 공부하라고 하지 않았지요. 다그친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잔소리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습니다. 아들이 입대하기 전날 저에게 ‘살아오는 동안 아버지는 한 번도 잔소리를 안 하고 크게 야단친 일도 없었지요. 그게 아버지의 교육 방법이라는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라는 편지를 남겼지요.
실제로 저는 아들을 때린 일은 당연히 없고, 크게 꾸짖은 일도 없습니다. 아들이 군에 있을 때는 편지로 안부를 묻고 집안 소식을 전하는 것 외에 세상 돌아가는 상황도 전했지요. 사람의 도리나 인성에 관한 생각도 전했는데, 아들의 삶의 철학과 가치관에 자양분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라지만 서로 생각이 달라 실망하는 일도 생겨나고 갈등의 골이 깊어져 꽤 오래 냉랭함이 계속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언제나 들어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집이고, 언제나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관계가 가족입니다. 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사실 생각대로 말이나 몸짓은 잘 따라주지 않는 게 현실이지요.
부모는 자식이 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게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듣고 싶은 소리는 ‘우린 너를 믿는다. 우린 언제나 네 편’이라는 말보다 부모의 웃음소리라고 하지요. 그런데 자식 앞에선 어른 노릇한다고 엄하게 대하는 게 보통 부모들의 몸짓입니다.
어릴 때는 잘 보호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요. 어느 정도 크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걱정이 돼도 모른 척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선택이 실패했을 때라도 자식에게 보냈던 신뢰를 깨서는 안 되지요. 이를 무너뜨리는 순간 자식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 어렵게 되거나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됩니다.
자식의 선택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게 남에게 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지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 혹은 욕심을 버린다는 게 그만큼 어렵고 인(忍)이라는 글자를 수없이 되풀이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래야 자식도 자유로워질 수 있지요. 자식의 인생은 온전히 자식이 누려야 할 가치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