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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를 만났습니다.^^

홍승표 2024. 7. 9. 20:33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인 백두산 천지를 만났습니다. 중국 선양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 중국지역회의와 자매결연 차 갔다가 주말에 백두산을 찾은 것이지요. 백두산은 ‘자기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백두산 천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만나보기 힘들다는데 가는 날부터 나흘 내내 비까지 내렸지요. 중국도 장마철이었기 때문입니다. 백두산으로 향하는 길에도 비를 만났지요. 창밖 풍경은 낯설지 않고 친근했습니다. 강원도에 가는 길과 흡사했지요. 백두산으로 향하는 길, 끝없이 이어진 자작나무 군락(群落)이 장관이었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세찬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거나 쓰러지지요. 자작나무는 바람 부는 대로 휘어졌다가 다시 일어선다고 합니다. 사람 세상살이와 같지요. 너무 강하거나 나약한 사람은 세파(世波)를 이겨내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나무 한 그루 보이질 않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서로 다른 얼굴로 웃으며 재잘대고 있었지요. 비록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소박하고 단아한 몸짓이 어느 꽃보다 더없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백두산 턱밑에 도착했지요. 솔직히 기대 반, 걱정이 반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제발 천지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요. 그렇지만 멈추지 않는 빗줄기를 헤치며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천지를 만나는 게 쉽진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처럼 천지를 만날 수 있었지요. 그 순간 가슴이 쿵쾅거리고 가슴속이 뜨거워지더니 환희와 감동이 벅차올랐습니다. 말이나 글로 형용할 수 없는 불기둥 하나가 솟구쳤지요. 불덩이가 가슴 속을 헤집고 다녀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한동안 먹먹함 속에 멍 때리고 서서 천지를 바라보았지요. 불현 듯 천지로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있다면 당연히 그리했을 것입니다만 북파 정상에서 천지는 낭떠러지라서 어찌할 수 없었지요. 아무도 없이 나 혼자라는 착각 속에 멍 때리고 있다가 사람들이 몰려들어 발을 옮겨야만 했습니다. 그때서야 휴대폰을 꺼내 천지의 얼굴을 담기 시작했지요. 나름 조망(眺望)이 좋은 곳을 찾아 천지의 모습을 휴대폰과 마음속에 담고 또 담았습니다. 장마철 빗속에서도 천지를 만나본 것은 정말 행운이었지요. 천지를 만난 건 인생최고의 순간이었고 저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천지의 기운을 온몸으로 만끽했지요. 살다가 이런 기쁜 일도 생기니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백두산은 한민족의 발상지이고 개국터전으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성지(聖地)이지요. 백두산(白頭山)이라 불리는 건 화산 폭발 때 생긴 하얀 돌들로 인해 산꼭대기가 사시사철 희게 보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연중 8개월은 눈으로 덮여 있지요.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창바이산(長白山)’이라 부르는데 역시 ‘흰 백’자가 들어 있습니다. ‘창바이산’은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되었지요. 북한이 개방을 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민족의 영산을 먼 길을 돌고 돌아가야 만날 수 있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루빨리 육로로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했지요.


"북한에선 당 간부나 고위층 가족 빼곤 백두산 구경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죽음을 무릅쓰고 남한으로 넘어와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있는데 백두산 천지까지 보니 그저 감격스러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꿈만 같습니다..."

그날 저녁, 동행한 두 분 탈북여성이 소감을 말하다 울음을 터트려 또 다시 울컥했습니다. 이렇게 가슴 뭉클한 감동의 순간이 또 다시 생겨나기를...!